휴전선 너머 이어진 쌍둥이 서예가의 붓
핵심 요약
쌍둥이 자매 이각경과 갈물은 분단 뒤 북과 남에서 각각 한글서예가로 활동했다. 두 사람의 재회와 공동전시는 여러 차례 추진됐지만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은 작품과 단편적인 소식에 의지해 혈육의 정을 이어갔다.
한집에서 함께 붓을 익힌 쌍둥이 자매 이각경과 ‘갈물’은 분단 뒤 각각 북과 남을 대표하는 한글서예가로 살았다. 외할아버지 야자 이만규가 이각경에게 ‘봄뫼’, 동생에게 ‘갈물’이라는 호를 지어줬다. 두 사람은 평생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휴전선 양쪽에서 붓을 놓지 않았고, 서로의 글씨는 끊어진 혈육의 정을 대신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 돌아온 지인은 갈물에게 봄뫼가 쓴 ‘혈육의 정’을 건넸다. 갈물은 언니가 살아 있다는 증표인 작품을 볼 때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멕시코 세계여성대회와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만남과 공동전시가 추진됐으나 모두 무산됐다. 갈물은 합동전시를 준비하며 매일 아침 목욕재계하고 새 작품을 썼지만 끝내 언니를 만나지 못했고, 3년 뒤인 1989년 세상을 떠났다.
이만규는 외과의사로 일하다 교육자로 전환해 송도중학교와 배화여학교 등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 통일과 표준어 제정에 참여하다 옥고를 치렀으며,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교육자 서정권을 사윗감으로 골랐다. 1948년 평양 남북협상에 참가한 뒤 귀환길이 막혀 북에 정착했고 외삼촌 가족과 봄뫼가 뒤따랐다. 갈물은 남편과 상의하겠다며 남쪽에 남았다.
북에서 이만규는 애국열사로 대접받았으나 남쪽 가족은 감시와 연좌제의 그늘을 겪었다. 서정권이 교육감 후보로 나설 때마다 좌절하자 가족은 북에 남은 장인의 이력과 관련이 있다고 여겼다. 2001년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 행사에서는 북한 참가자를 통해 외삼촌의 소식 일부만 들을 수 있었다. 편지와 사진조차 자유롭게 나누지 못한 가족은 전해 들은 이름과 작품 한 점에 의지했고, 갈물은 살아남은 가족에 감사하면서도 곁에 없는 이들을 잊지 않고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