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를 지키고 의리를 세운 한국 호랑이
핵심 요약
원주·영월·천안의 문화유산에서 효자와 호랑이가 얽힌 기록과 설화를 확인했다. 최루백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고, 금사하와 유언겸은 호랑이의 도움과 보호를 받은 인물로 남았다. 한국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을 넘어 효와 의리, 공동체 질서를 지키는 상징으로 나타난다.
효와 호랑이의 관계를 확인하는 문화유산 탐방이 지난 4일 강원 원주·영월과 충남 천안에서 진행됐다. 여정은 20여 년간 문화유산을 연구해 온 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여행 작가가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영월 의호총, 천안 유언겸 정려를 차례로 살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세 장소의 기록과 유물에는 공포의 대상이던 호랑이가 효자를 돕거나 의로움을 지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한중일 목판 문화 자료 6천여 점을 소장한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에서는 한선학 관장의 협조로 오륜행실도 속 ‘루백포호’ 삽화와 체험용 목판 탁본을 확인했다. 네 장면으로 구성된 삽화는 고려의 최루백이 15세 때 아버지를 해친 호랑이를 도끼로 잡고, 배를 갈라 유해를 수습해 장례를 치른 뒤 여막에서 3년간 묘를 지킨 과정을 담았다. 고려사에는 그가 꿈에 나타난 아버지를 그리며 봉양과 사후의 묘 지키기를 노래한 시도 실려 있다.
영월 주천강 인근 의호총에는 조선 숙종 때 효자 금사하를 도왔다는 호랑이 이야기가 남아 있다. 병든 어머니의 약을 구하려던 금사하는 홍수로 강을 건너지 못했으나 호랑이 등에 올라 강을 건너 치료에 필요한 약을 마련했다. 이후 금사하가 부모의 묘에서 3년상을 치를 때 호랑이도 곁을 지켰고, 죽은 뒤에는 장례와 함께 무덤을 얻었다. 의호총 비석 뒷면에는 1743년 7월 순영중군의 지시로 비를 세웠으며, 금사하가 1720년 국상 뒤 호랑이와 함께 3년상을 마치자 호랑이가 사흘 후 죽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현장에는 여막과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금사하, 주천강을 바라보는 호랑이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천안 동남구 풍세면 공수마을의 유언겸 정려는 본인과 아내, 자식, 손자까지 3대가 효자·열녀문을 받은 곳이다. 건물 내부 포벽에는 대나무숲에서 포효하는 호랑이가 조각돼 있다. 전승 속 한 쌍의 호랑이는 어머니 묘에서 시묘살이하던 유언겸을 지키며 도둑과 돌림병 환자의 접근을 막았고, 제사를 항의하던 주민들을 물러나게 했다. 최루백에게는 효를 실천할 용기로, 금사하와 유언겸에게는 의로운 조력자로 나타난 호랑이는 효자와 의인을 보호하고 공동체 질서를 수호하는 한국 호랑이 설화의 성격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