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 밖 관계까지 품는 가족정책 전환 제안
핵심 요약
가족정책의 중심을 혈연·혼인 관계에서 개인의 일상 유지로 넓혀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20~40대 비혼 여성들은 돌봄과 정서적 지지, 주거 등을 여러 관계망을 통해 확보하고 있었다. 주거·경제·돌봄·정서 지원과 함께 고립을 사회적 위험으로 다루는 협력 체계가 요구됐다.
혼인율 하락과 1인 가구 증가에 맞춰 가족정책의 중심을 가족 구성 여부가 아닌 개인의 일상 유지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9일 공개한 ‘가족변화에 대응하는 포괄적 가족정책 모색’ 보고서는 혈연과 혼인에 한정된 가족 개념을 넓혀 비혼 동거와 비친족가구 등 개인이 형성한 여러 관계를 정책 대상으로 포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가족을 이루는 일이 개인의 선택 영역으로 이동한 현실을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연구진이 20~40대 비혼 여성 25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 참여자들은 혈연 중심 가족 안에서 심리적 부담과 차별, 불편, 폭력, 은둔 등의 문제를 경험했다. 위계적이고 일방적인 관계와 개인의 개성·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이런 경험의 배경으로 분석됐으며, 일부는 가족과 거리를 두거나 관계를 끊었다. 참여자들은 삶의 기본 단위를 개인으로 인식하면서 임시 돌봄, 상호 지원, 정서적 지지, 공동 주거, 친밀한 공동체 등 필요에 맞는 관계망으로 일상을 꾸려왔다.
이번 보고서는 같은 연구진이 지난 6월 발표한 정책과제의 후속 연구로, 비혼 여성 조사 결과를 새로 담았다. 제1차부터 제4차까지 지난 20년간의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분석한 결과, 가족·돌봄 정책은 대체로 혈연과 혼인에 기반한 좁은 가족 형태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최근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일부 조정됐지만, 기존 제도 안의 차별을 줄이는 수준에 머물러 개인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필요로 하는 주거·경제·돌봄·정서 자원을 지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확인됐다.
연구진은 가족 유무와 무관하게 개인이 생활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정책 범위를 넓히고, 정서적 교류와 유대, 상호 도움과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 자체를 핵심 자원으로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영국과 독일의 외로움 대응 정책처럼 고립과 외로움을 사회적 위험으로 인식하고,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네트워크형 체계를 마련할 필요성도 제시했다. 아울러 가족을 사적 영역에만 가두지 말고 폭력과 차별을 예방하며 개인의 가치와 생활방식,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친밀한 관계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