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학생운동 이끈 이석규 지사 영면
핵심 요약
호남권의 마지막 생존 애국지사였던 이석규 지사가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지며 15일 영결식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이 지사는 무등독서회와 임시정부 비밀 연락원으로 항일운동을 펼쳤다.
호남권에 남아 있던 마지막 생존 애국지사 이석규 지사가 13일 0시56분께 전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100. 지난 4월부터 건강 악화로 병원 치료를 받아온 이 지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국내 생존 애국지사는 3명으로 줄었다.
빈소는 전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15일 진행된다. 장례는 광복회가 주관하는 장례위원회 아래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같은 날 오전 11시 전북특별자치도청에서 열리며, 이후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1926년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난 이 지사는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 일본인들에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모욕과 폭행을 당한 일을 계기로 항일의식을 키웠다. 이후 친구들과 독립운동 단체인 ‘무등독서회’를 조직하고, 일제가 금지한 한글 서적 ‘이순신’ 등을 함께 읽으며 민족의식을 높였다. 거리에는 ‘일본은 물러가라’는 내용의 전단과 벽보를 붙여 반일 여론 확산에 나섰다.
이 지사는 임시정부 비밀 연락원으로도 활동하며 밀령을 무등독서회 조직원들에게 전달했다. 1945년 조직이 발각된 뒤 일제 경찰에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해방 이후에는 교직에 몸담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92년 익산 왕궁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항일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2010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