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폐교에서 시작된 대안교육의 실험과 좌절
핵심 요약
장회익은 서울대 정년을 앞두고 퇴직해 2003년 함양에서 녹색대학교 설립에 참여했다. 입학시험과 학업시험을 없애고 학습 기록과 공동 합의를 중심으로 한 대안교육을 시도했다. 재정난과 구성원 간 이념 차이로 대학은 좌절됐지만 녹색 아카데미는 20여 년째 명맥을 잇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30여 년 재직한 장회익은 정년을 약 반년 앞두고 임의 퇴직한 뒤 대안교육기관 설립에 뛰어들었다. 제도권 대학의 개혁 역량에 한계를 느끼던 그는 교육 본연의 정신과 새로운 녹색 문명을 지향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총장을 맡았다. 준비진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의 폐교된 백전중학교를 인수했고, 2003년 4월 이곳에서 녹색대학교 창립식을 열었다.
낡은 교사는 수리해 교육 공간으로 바꾸고 운동장 한편에는 컨테이너 대여섯 동을 연결한 임시 기숙사를 마련했다. 별도의 입학시험 없이 학교의 목표에 대한 지원자의 의지를 확인했으며, 입학 뒤에도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학생들은 학습 과정을 개인별 파일에 기록해 영구 보관하고 이를 수시로 발표·검토하기로 했다. 공동 행사는 전체 합의로 결정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녹색대학은 자연의 자정 능력을 넘어선 생산·유통·소비·폐기의 구조를 문명과 교육의 위기로 진단했다. 생태적 조화를 회복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실천하고, 정형화된 제도와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내실 있는 배움을 구현하는 것이 창립 목표였다. 도법스님과 김진균 서울대 교수, 이효재 이화여대 교수, 고은 시인 등이 현장을 찾아 격려했지만 운영에 필요한 후원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거액 기부자를 기대했던 재정 구상은 현실화하지 않았고, 구성원들이 모금에 나섰지만 최소한의 생계를 뒷받침할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다. 녹색이라는 방향에는 뜻을 모았으나 이념의 차이와 지성 함양을 둘러싼 견해차도 커지면서 대학 실험은 끝내 좌절됐다. 옛 교정에는 현재 작은 생활공동체가 남아 있으며, 서울에서 시작한 녹색 아카데미는 20여 년째 이어지고 있다. 최우석 연구자와 황승미 작가가 온라인으로 모임을 이끌며 녹색 지성에 관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