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철학 100년, 정신과 주체를 다시 묻다
핵심 요약
민족종교의 철학적 종합과 정신형이상학은 한국 현대철학의 주요 출발점을 이뤘다. 물질·주체·정신을 포괄하는 인간 존재론과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의 재구성이 과제로 제시됐다. 불교철학과 서구 존재론을 교차한 사유는 물화와 상품화의 현실에 대응할 철학적 자산으로 평가된다.
한국 현대철학의 지난 100년은 동학과 대종교를 비롯한 민족종교에서 출발해 인간의 정신과 주체, 정치와 존재를 새롭게 해석해온 과정으로 정리된다. 특히 이돈화의 ‘신인철학’은 토착 사상과 유·불·도, 성리학, 서학이 여러 방식으로 결합한 사상사적 원점이었다. 종교의 창시와 기존 철학의 종합이 함께 진행됐다는 점에서 민족종교의 역사는 현대 한국 철학사의 중요한 일부를 이룬다.
동학을 원형으로 한 정신형이상학은 인간 정신을 초월적 차원인 ‘하늘’과 현실적 차원인 ‘땅’을 잇는 결절점으로 파악한다. 성리학의 전통 위에서 스피노자와 헤겔, 베르그송의 철학을 받아들여 형성된 이 흐름을 오늘의 언어로 계승하려면 현대 심리철학과의 접점이 필요하다. 여기에 실존주의에서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로 이어진 주체론을 연결해 물질·주체·정신의 세 층을 함께 설명하는 인간 존재론을 구축하는 과제가 놓인다.
정치철학의 흐름에서는 자유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인 박종홍, 사회주의자인 박치우와 신남철, 아나키스트 하기락이 서로 다른 길을 보였다. 박종홍의 ‘창조의 논리’는 개발독재기의 근대화를 뒷받침했지만 자연과 노동의 착취라는 그늘도 남겼다. 박치우와 신남철은 파시즘뿐 아니라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계급 현실을 가린다고 비판했고, 하기락의 아나키즘은 자본과 국가에서 동시에 벗어나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 유산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타자-되기의 정치철학을 모색하는 토대가 된다.
불교철학과 서구 존재론을 교차시킨 작업도 향후 한국 철학의 주요 자산으로 꼽힌다. 고형곤은 선불교의 가르침을 하이데거 존재론과 연결했고, 김형효는 반대 방향에서 하이데거를 유식·화엄철학으로 읽었다. 박홍규는 아페이론을 중심으로 서구 존재론사 전체를 조망했으며, 김상일은 현대 논리학과 수학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와 아페이론에 접근했다. 이 흐름들을 잇는 과제는 동서 사유의 경계를 넘어 새 존재론을 만들고, 모든 것을 물화하고 상품화하는 현실에 맞설 개념을 창조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