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의사 가문’ 언급 뒤 증조부 행적 논란
핵심 요약
하영이 4대째 의사 집안임을 소개한 뒤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됐다. 안상호는 근대 의료 발전에 기여했지만 친일 단체 활동과 내선일체 선전에 참여했다. 논란은 후손의 책임보다 가문의 역사와 물려받은 유산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된다.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4대째 이어진 의사 집안의 내력을 소개한 뒤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묻는 연좌제가 아니라, 공인인 하영이 가문의 성취를 알리는 과정에서 그 이면의 역사를 알고 있었는지에 맞춰졌다.
안상호는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자혜의원 의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얻었다. 순종의 전의를 지낸 뒤 고종을 진료했으며, 서울 최초의 서양식 의원 설립과 의사연구회 결성, 한성의사회 초대 회장 역임 등 근대 의료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의학적 성취와 별개로 안상호는 대정친목회에서 이완용과 함께 활동했고, 조선총독부 기관지를 통해 자신을 사실상 일본인으로 내세우며 내선일체 선전에 참여했다.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독살설이 확산했을 때에는 진료를 담당한 그에게 왕실의 의혹과 민중의 분노가 집중됐다.
같은 시대를 산 우장춘은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우범선의 아들이었지만 독립운동가들과 뜻을 나누고 해방 뒤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배추와 무 등 채소 종자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상반된 두 삶은 혈통 자체보다 과거의 공과를 사실대로 마주하고, 물려받은 유무형의 유산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문제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