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부른 냉각기술 투자 열풍, 국내는 뒷걸음질
핵심 요약
유럽 폭염으로 냉각기술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가 몰리고 있다. 국내 냉각기술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투자 유치에는 실패하고 있다. 폭염 대응 수요가 커지는 만큼 정책 지원과 실증 무대가 필요하다.
유럽을 덮친 기록적인 폭염이 냉각기술 시장을 거대한 투자처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 낮 최고기온이 44도까지 오르는 등 유럽 전역에서 1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에어컨 보급률이 낮고 전력 비용이 높은 상황이 냉각 수요를 폭발적으로 키웠다. 이에 따라 글로벌 벤처투자자들은 기후테크 중에서도 냉각 분야에 주목하며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유럽 스타트업 데이터 플랫폼 딜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기후테크 스타트업 투자는 383억달러(약 57조원)에 달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194억달러(약 29조원)가 유입됐다. 영국 스타트업 바로칼은 화학 냉매를 쓰지 않고 압력 변화에 반응하는 고체형 바로칼로릭 소재로 냉난방을 구현하는 기술로 지난 5월 1000만달러(약 150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이스라엘의 주타코어는 AI 반도체 표면에 비전도성 특수 액체를 흘려 끓이는 방식으로 열을 식히는 기술로 지난달 1억달러(약 15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받았으며, 삼성벤처투자가 캐리어, 미쓰비시전기와 공동 리드 투자자로 참여했다. 미국 MIT 원자력공학 연구진이 설립한 페르베렛도 원자력발전소 냉각 원리를 응용한 액침냉각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냉각기술 수준은 세계적이지만 투자 유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고려대 연구진은 1㎡당 100와트 냉각이 가능한 냉각페인트를 개발해 냉동창고 표면 온도를 10도 이상 낮췄고, 한국화학연구원과 중앙대 연구팀은 직사광 아래에서 주변보다 9도 낮아지는 생분해성 냉각필름을 만들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색상을 입힌 복사냉각 소재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표면 온도를 10도 이상 낮추는 냉각섬유를 개발했다. 그러나 2019년 GIST에서 나온 복사냉각 스타트업 포엘과 국내 유일 액침냉각기 제조사 데이터빈 등은 여전히 스케일업을 준비 중이다.
냉각기술에 대한 수요는 산업 현장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근로자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웨어러블 기기가 보급되고, 건설 현장에서는 실시간 체감온도 모니터링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조선소들은 바닥에 매일 수백톤의 물을 뿌리며 열기를 식히고 있다. 폭염 대응이 산업안전의 핵심 과제가 되면서 냉각·열관리 기술의 구매처는 늘어나지만, 정작 투자 자금은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이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폭염이 일상이 된 이상 냉각기술은 기후테크 중 가장 확실한 수요가 보장된 영역이라며, 대학과 출연연의 원천기술을 창업화하는 지원책과 국내 데이터센터·산업현장의 수요 공급이 어우러지면 국내에서도 대규모 투자 유치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