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시대, 도시계획의 목표를 다시 세우다
핵심 요약
파리는 19세기 위생 문제를 해결한 도시 구조가 폭염 속에서 열을 가두는 한계에 직면했다. 서울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는 폭염·해수면 상승·지반 침하에 대응하는 재설계를 추진하고 있다. 도시계획의 중심을 집값 관리에서 기후 대응과 지속가능성으로 넓힐 필요가 커졌다.
19세기 콜레라와 열악한 위생에 대응해 전면 개조됐던 파리가 170여 년 만에 폭염이라는 새로운 위협과 마주했다. 넓은 석재 광장과 도로는 낮에 흡수한 열을 밤까지 내보내고, 아연 지붕은 열을 쉽게 축적한다. 주요 관광지의 개장 시간이 단축되고 여행을 미루는 움직임까지 나타나면서, 5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1위를 지킨 파리의 경쟁력에도 기후 부담이 더해졌다.
오늘날 파리의 골격은 나폴레옹 3세가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에게 맡긴 대개조에서 형성됐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직선형 방사 가로망을 내 군대의 이동성을 높였고, 바람길과 하수도를 정비해 위생을 개선했다. 5~6층 석조 건물이 통일된 경관을 만들었지만, 철거 과정에서 노동자와 저소득층이 외곽으로 밀려났다. 중심지의 토지·주택 가격과 임대료 상승은 갈등을 키웠고 파리 코뮌 봉기의 한 원인이 됐다.
대개조가 남긴 도시 구조는 빈과 로마, 워싱턴DC, 부에노스아이레스, 하노이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경성부 계획에도 영향을 줬다. 그러나 당시 위생과 치안에 적합했던 설계가 기후변화 아래에서는 열을 가두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다. 베네치아는 해수면 상승에 따른 수몰 위험을 겪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지반 침하 문제로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누산타라로 이전하는 결정을 내렸다. 도시가 시대별 핵심 위협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서울도 올여름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겪었다. 청계천 복원은 바람길 회복과 도심 열섬 완화 효과를 보였고, 세운상가 철거·공원화 사업도 열섬 저감과 바람길 확보를 목표에 포함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 상황을 국가 재난 사태로 보라고 국무위원들에게 지시했다. 집값 관리와 수요 억제, 보존 중심 규제에 머문 도시계획을 넘어 기후 대응과 지속가능성, 장기적인 도시 경쟁력을 함께 다루는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