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기억이 닿은 4300㎞의 칠레
핵심 요약
무더위 속 기묘한 꿈이 어린 시절 전봇대의 기억을 불러냈다. 지구 생명의 기원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최근 소식은 시선을 칠레로 옮겼다. 약 4300㎞ 뻗은 칠레는 길어진 생과 시간을 비추는 새로운 상징이 됐다.
무더위에 흘린 땀은 물가에서 시작된 꿈을 칠레까지 이끌었다. 시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던 중 다리가 길어지고 발끝부터 물에 녹는 장면이 펼쳐졌고, 피가 나는데도 통증은 없었다. 놀라 밭 가운데 전봇대를 향해 달리다 잠에서 깬 뒤에는 목 주변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꿈에 등장한 전봇대는 여행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잇는 대상이다. 나라마다 형태가 다른 전봇대를 눈여겨보는 습관에는 자동차로 달릴 때 마주하는 속도감과 풍경의 변화가 겹쳐 있다. 골짜기로 성큼성큼 멀어지며 웅웅 소리를 내던 모습도, 무밭 한가운데에서 올려다본 모습도 오랜 기억 속에서 기차처럼 길게 이어진다.
폭염의 근원을 생각하던 시선은 지구와 대기가 함께 진화하는 과정을 다룬 KBS 다큐멘터리 ‘지구의 시간’으로 옮겨갔다. 생명의 기원을 심해나 운석에서 찾는 여러 학설 가운데 초기 생물의 단서를 살핀 현장은 안데스산맥의 타티오 간헐천이었다. 대통령 일행의 순방과 칠레 중남부의 강한 폭풍우, 아르헨티나 서부 산악지대의 기록적인 폭설도 칠레를 다시 떠올리게 한 배경이 됐다.
남미 대륙의 서쪽을 따라 약 4300㎞ 뻗은 칠레의 지형은 남극을 딛고 대륙을 받치는 지팡이를 연상시킨다. ‘총, 균, 쇠’가 제시한 남북으로 긴 지형의 불리함과 달리, 칠레는 선진국이자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로 언급된다. 나이와 생의 시간이 길어진 지금, 길이를 상징하는 대상도 전봇대에서 칠레로 바뀌었다. 더위와 길이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세수하다 자신을 칠레처럼 길다고 되뇌는 말은 뜻밖의 유쾌함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