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의 기억과 예학의 숨결, 논산을 걷다
핵심 요약
강경은 조선 후기 3대 시장으로 번성한 포구의 흔적을 근대 건축과 젓갈거리로 이어가고 있다. 돈암서원과 명재고택은 김장생과 윤증이 실천한 포용과 배려의 정신을 보여준다. 관촉사의 국보 은진미륵은 고려 초기 지방 문화의 독자성과 역량을 전한다.
논산 여행의 한 축은 금강을 통해 서해와 이어졌던 강경의 옛 포구에서 시작된다. 조선 후기 강경포구는 평양·대구와 함께 3대 시장으로 꼽혔고, 서해에서 들어온 생선과 소금이 충청·전라·경상도로 퍼지는 내륙 물류 거점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여관과 병원, 재판소, 극장, 전화선까지 갖춘 도시로 성장했지만 1914년 호남선 개통과 도로망 확충, 금강하구둑 건설을 거치며 포구 기능을 잃었다.
강경근대역사문화거리에는 옛 강경노동조합과 한일은행 강경지점, 연수당 건재약방, 1924년 설치된 강경 갑문 등이 남아 당시의 경제적 위상을 보여준다. 한때 2,000~3,000명의 부두 노동자가 모였던 노동조합 건물은 전쟁으로 2층이 사라진 채 1층만 전한다. 1961년 보드뱅 신부가 설계한 강경성지성당은 뒤집힌 나룻배를 닮은 지붕으로 눈길을 끌며, 인근 젓갈거리는 옛 염장 기술과 발효 문화를 이어간다.
논산의 또 다른 중심은 사계 김장생의 학문을 기리는 돈암서원이다. 1634년 세워진 이 서원은 사적 제383호이자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한국의 서원 아홉 곳 중 하나다. 입덕문을 지나면 눈썹처마가 달린 응도당과 정회당, 양성당, 장판각, 숭례사가 이어진다. 사당 앞 꽃담의 ‘지부해함’, ‘박문약례’, ‘서일화풍’ 열두 글자는 포용과 실천하는 예, 타인을 편안하게 대하는 마음을 압축해 보여준다.
명재 윤증의 고택은 행랑채와 담장이 없는 소박한 구조, 낮은 아궁이에서 이웃을 먼저 살핀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 마당의 수백 개 항아리에는 대를 이어온 전독간장이 담기고, 대들보에는 동학농민운동 때 생긴 것으로 전해지는 탄 흔적도 남아 있다. 관촉사에서는 968년 조성을 시작해 37년 만에 완성된 높이 18.12미터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만날 수 있다. 2018년 국보가 된 은진미륵은 파격적인 비례로 고려 초기 지방 문화의 힘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