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균열 견디는 삶과 연대로 시선 넓혔다
핵심 요약
편혜영이 5년 만의 소설집 『새들의 사회성』에서 균열을 견디는 개인과 관계를 조명했다. 표제작과 ‘포도밭 묘지’는 생존을 위한 동행, 노동과 계급의 상처, 조용한 연대를 담았다. 단편 ‘우리가 가는 곳’을 확장한 장편도 구상하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미학으로 일상의 불안과 폭력성을 파고들어 온 소설가 편혜영(54)이 5년 만의 새 소설집 『새들의 사회성』을 문학동네에서 펴냈다. 여덟 편의 단편에는 차갑고 기괴한 묘사 대신 온기와 유머가 한층 선명해졌다. 세계의 균열 자체를 응시하던 시선이 그 틈을 견디며 관계를 이어가는 개별 인물의 삶으로 이동한 결과다.
표제작은 고교 동창인 ‘나’와 ‘신도’가 뜻밖의 빚으로 얽히는 과정을 그린다. 제약회사 인턴인 ‘나’는 은행 자동화 코너의 빨간 지갑에서 3만원을 꺼냈다가 경찰서에 출석하고, 신고자가 지갑에 100만원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신고자가 신도라는 사실까지 드러난 뒤 두 사람은 불가피한 동행을 시작한다. 무리를 지어 비행하는 철새의 모습은 살아남으려 서로 기대는 약한 존재들의 처지를 압축한다.
편혜영은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이후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과 장편 『홀』 등을 통해 공포와 소외를 절제된 문장으로 형상화했고, 『홀』로 셜리 잭슨상을 받았다. 이번 책에서도 세계가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과 불안·상실을 드러내는 문체는 유지된다. 다만 희망이 없다는 상태를 곧바로 절망과 동일시하지 않고, 평범한 하루를 지속하게 하는 작은 힘에 주목한다.
2022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 ‘포도밭 묘지’도 수록됐다. 상고 시절부터 사회 초년생 때까지 함께한 네 친구와 낮에는 은행,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닌 한오를 중심으로 학력·성별의 장벽과 노동, 계급의 상처와 연대를 다룬 작품이다. 편혜영은 표제작을 가장 애착이 가는 소설로 꼽으며 이후 인물 관계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다음 작품으로는 자발적 실종을 택한 여성과 실종 대행업자의 여정을 그린 단편 ‘우리가 가는 곳’을 장편으로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