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도끼 사건 50년, JSA를 바꾼 충돌
핵심 요약
판문점 미루나무 가지치기 현장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유엔군 장교 2명이 숨졌다. 유엔군은 데프콘3 발령과 폴 버니언 작전으로 미루나무를 제거했다. 사건 이후 JSA에 군사분계선이 설치돼 양측 경비 구역이 분리됐다.
오는 18일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군이 유엔군 장교 2명을 살해한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1976년 8월 18일 유엔군 경비대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 인근 제3초소의 시야를 가리던 미루나무를 가지치기하다 북한군의 공격을 받았다. 현장에 있던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배럿 중위가 숨지고 유엔군과 국군 장병들이 다쳤다.
작업에는 한국인 노무자 5명과 보니파스 대위, 배럿 중위를 비롯해 유엔군 병사 4명과 한국군 5명이 참여했다. 오전 10시 50분께 박철 중위가 이끄는 북한군 병력이 작업 중단을 요구했고, 11시 무렵 추가 병력까지 도착했다. 작업이 계속되자 북한군은 쇠몽둥이와 삽, 노무자들의 도끼를 빼앗아 공격했다. 보니파스 대위는 현장에서 살해됐고 구타당한 배럿 중위는 이송 도중 사망했다.
사건 전 JSA에는 별도의 경계선이 없어 유엔군·국군과 북한군이 한 구역에서 경비를 섰다. 긴장이 높아진 배경에는 1975년 베트남전 종전 이후 북한의 공세적 움직임이 있었다. 같은 해 6월에는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미 육군 W.D. 헨더슨 소령을 집단 구타해 중태에 빠뜨렸다. 이 사건의 주동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박철은 이듬해 미루나무 작업 현장에서도 공격을 지휘했다.
유엔군은 사건 뒤 데프콘3를 발령하고 문제의 나무를 제거하는 ‘폴 버니언 작전’을 실시했다. 한미 지상 병력 140명이 경비에 나섰고 F-4 전투기와 F-111, B-52 폭격기, 미드웨이 항공모함이 투입되거나 출격 태세를 갖췄다. 8월 21일 벌목은 완료됐으며, 국군 결사대 64명은 JSA 안의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했다. 이후 김일성의 사과 메시지가 미국 측에 비공개로 전달됐고, JSA에는 군사분계선이 설치돼 양측 경비 구역이 분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