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발등에 펼친 제주 바다의 수평선
핵심 요약
‘고운 날’은 저녁 파도를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모습과 포개어 그린 시조다. 발등에서 풀어지는 파도는 아득하고 너른 수평선을 가까운 감각으로 바꾼다. 제주에서 살아온 고정국 시인은 바다와 섬, 등대를 새로운 비유로 형상화한다.
고정국 시인의 시조 ‘고운 날’은 해 질 무렵 바다로 돌아오는 파도를 먼 곳에서 뛰어놀다 집을 찾아온 아이의 모습에 겹쳐 놓는다. 해변까지 밀려온 파도가 발등에서 부드럽게 흩어지는 순간은 수평선이 가까이에 펼쳐지는 장면으로 바뀐다. 짧은 작품 안에서 바다의 움직임과 아이의 천진한 기운, 저녁의 평온한 정경이 하나로 이어진다.
작품이 그리는 ‘고운 날’은 하루가 산뜻하고 아름다우며 별다른 탈 없이 순조롭게 흐른 날이다. 마음까지 편안하고 고요해진 저녁, 시인은 먼바다에서 되돌아온 파도가 흰 모래와 자신의 발등 위에서 잔잔히 풀어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파도가 수평선을 내려놓는다는 발상은 아득한 거리와 넓고 평평한 바다의 감각을 발밑의 작은 움직임으로 압축한다.
1947년 태어난 고정국 시인은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출신으로, 현재도 제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의 시조에는 삶의 터전인 바다와 섬이 익숙한 풍경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감각을 입은 대상으로 나타난다. 석양과 파도, 모래와 수평선처럼 제주 바다를 이루는 요소들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인의 서정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드러낸다.
또 다른 작품 ‘내 사랑 서귀포 등대’에서는 밤마다 내려온 별이 안개에 둘러싸인 바다에 잠겼다가 섬 끝으로 올라와 굶주린 듯한 눈길을 보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고운 날’의 파도가 먼 수평선을 발등에 옮겨 놓았다면, 이 작품의 등대는 별과 바다 사이에 자리한 섬의 끝에서 시선을 밝힌다. 두 작품은 제주 풍경을 낯선 비유로 되살린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