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 판세 바꾼 소련 대령의 전향
핵심 요약
소련 GRU의 올레크 펜콥스키 대령은 자발적으로 미국 측에 접근해 핵·미사일 기밀을 제공했다. 그의 정보는 소련 군사력의 과대평가를 바로잡고 쿠바 미사일 위기 대응과 철수 협상에 활용됐다. KGB의 추적 끝에 펜콥스키는 처형됐고 전달책 그레빌 윈은 수감 후 스파이 교환으로 석방됐다.

냉전기 소련군 정보총국(GRU)의 올레크 펜콥스키 대령은 스스로 미국 측에 협력을 제안한 대표적인 ‘워크 인’ 정보원이었다. 워크 인은 적국 정보기관의 포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스파이 활동이나 망명을 요청하는 자발적 전향을 뜻한다. 펜콥스키가 넘긴 핵·미사일 정보는 서방이 소련의 군사력을 다시 평가하고 1962년 쿠바 사태에 대응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육군 장교였던 그는 1953년 GRU로 옮겨 해외 무관 등으로 경력을 넓혔다. 그러나 인사 검증에서 부친의 반볼셰비키 활동 전력이 문제가 되자 체제에 환멸을 품고 전향을 결심했다. 1960년 8월 모스크바의 다리에서 만난 미국 학생에게 미국대사관으로 서신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중앙정보국(CIA)은 기만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한 뒤 ‘HERO’라는 암호명을 부여했다.
CIA는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감시와 미국인 접선책이 받을 주목을 고려해 영국 비밀정보국(MI6)과 합동 공작을 벌였다. 모스크바 주재 MI6 요원의 부인이 접선을 맡았고, 동유럽과 거래하던 영국 사업가 그레빌 윈이 자료 전달책으로 투입됐다. 펜콥스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군사자료와 GRU 암호체계를 제공했으며, 1961년 런던에서는 소련의 핵무기 보유량과 ICBM 생산 능력이 기존 평가보다 훨씬 낮다는 실상을 알렸다.
쿠바 사태가 발생하자 그가 제공한 탄도미사일 기지와 발사대 형태 관련 정보는 소련의 미사일 배치를 입증하는 데 활용됐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강경 대응과 철수 협상에 힘을 보탰다. 이후 소련 스파이였던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 잭 던랩이 군사기밀 유출 정황을 알리면서 KGB의 추적이 시작됐고, 펜콥스키는 체포돼 처형됐다. 윈도 간첩 혐의로 수감됐다가 스파이 교환으로 풀려났으며, 두 사람의 활동은 2021년 개봉한 영화 ‘더 스파이’로 다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