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식탁에서 되살아난 고향의 노각 맛
핵심 요약
캐나다 한인마트에서 산 노각이 한인 부부의 휴일 식탁에 올랐다. 강한 쓴맛은 절임과 냉장 숙성을 거치며 줄었고 고추장 양념과 아삭한 식감이 어우러졌다. 노각 비빔밥은 꽁보리밥과 함께했던 고향의 여름 기억을 되살렸다.
캐나다의 한인마트에서 발견한 노각 한 개가 한인 부부의 휴일 식탁에 고향의 여름을 불러왔다. 현지 마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누르스름하고 묵직한 늙은 오이였다. 남편이 한국에서 여름마다 즐겨 먹던 음식임을 아는 아내는 망설이지 않고 노각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김치와 고추장까지 챙겨 해외로 떠나던 과거와 달리 한국 식품이 풍성해진 현지 매장의 변화도 실감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감자칼로 짙은 황갈색 껍질을 벗기자 뽀얀 연초록색 속살이 드러났다. 씨가 든 속을 파내고 채를 썰어 맛본 노각에서는 예상과 달리 혀끝을 찌르는 강한 쓴맛이 났다. 소금과 설탕을 넣어 약 15분간 절인 뒤 물에 헹구고 양념에 무쳤지만 쓴맛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부부는 노각무침을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두고 양념이 더 배기를 기다렸다.
산책을 마친 뒤 부부는 베란다에 마주 앉아 밥에 노각무침을 얹어 비볐다. 한입 먹자 약한 쓴맛 사이로 노각의 오독오독한 식감과 고추장 양념이 어우러졌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제때 따지 못한 오이가 넝쿨에서 늙어 노각이 되곤 했다. 껍질을 듬성듬성 벗긴 노각을 고추장과 참기름에 무쳐 꽁보리밥에 비벼 먹는 음식은 무더운 계절의 소박한 별미였다.
처음에는 버릴까 고민할 만큼 썼던 노각은 차갑게 숙성된 뒤 아삭한 식감과 익숙한 양념 맛을 되찾았다. 흰쌀밥이 흔하지 않던 시절, 반찬 투정 없이 한 그릇의 꽁보리밥으로 여름을 나던 기억도 함께 되살아났다. 타국의 베란다에서 나눈 노각 비빔밥은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부부에게 모처럼 휴일의 여유를 안겼고, 오래 잊고 지낸 고향의 여름과 넉넉했던 마음을 다시 마주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