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깬 생존자들, 전시 성폭력의 역사를 세우다
핵심 요약
김학순 선생의 1991년 공개 증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 여성 인권 의제로 확장했다. 각국 생존자들은 전쟁 피해뿐 아니라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낙인 속에서 오랜 침묵을 견뎠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현재도 이어지는 전시 성폭력과 여성 대상화를 끝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선생이 약 50년간의 침묵을 깨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그의 결심은 같은 경험을 감춰 온 생존자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계기가 됐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인 여성 인권 의제로 끌어올렸다. 이날은 2012년 아시아연대회의와 2017년 한국 정부를 거쳐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로 지정됐다.
일본군은 태평양전쟁 시기 한국과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일본 등에 위안소를 설치했다. 피해 규모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으며 5만∼20만 명이라는 추정치와 최대 4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함께 존재한다. 네덜란드 출신 얀 루프-오헤른과 중국의 완아이화 등 각국 생존자들은 납치와 감금, 성폭력, 고문을 겪은 뒤에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증언에 나설 수 있었다.
생존자들의 침묵에는 개인의 결심만으로 넘기 어려운 정치·사회적 장벽이 놓여 있었다. 중국에서는 일부 피해자가 오히려 조사와 박해, 강제이주를 겪었고, 베트남과 필리핀에서는 권위주의적 여성상과 일본과의 경제·외교 관계가 공개 논의를 제약했다. 한반도 출신 최초 공개 생존자인 배봉기 선생도 해방 뒤 오키나와에 남았으며, 1975년 체류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피해 사실이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알려졌다.
각국의 정치적 조건과 가족·조력자의 지지,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당사자의 용기가 함께 작동해야 증언은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생존자는 취재 내용 기준 5명만 남아 있다. 그러나 생존자 모욕은 계속되고 일본 정부도 국가와 군에 의한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증언은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이어지는 전시 성폭력과 여성 대상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요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