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떠나 맞은 첫 폭염, 해든집 주민들 “이제야 내 집”
핵심 요약
남대문 쪽방촌 주민들이 이주한 해든집에서 첫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고 있다. 주민들은 에어컨과 세탁기 사용 등 주거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는 다른 쪽방촌도 해든집과 같은 방식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온 최기례씨(76)는 지난해 9월 ‘해든집’으로 이주한 뒤 처음 맞는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고 있다. 최씨는 “쪽방에 살 때는 더워서 문을 열어놓으면 낯선 남자들이 들어오기도 했고, 벌레가 몸을 기어 다니기도 했다”며 “지금은 에어컨이 있어서 시원하고 벌레도 없어 살기 좋아졌다”고 말했다. 해든집은 남대문 쪽방촌 재개발 과정에서 주민들을 먼저 이주시킨 뒤 쪽방을 철거하는 ‘선이주 후개발’ 방식으로 조성된 임대주택이다.
지난 29일 서울 전역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해든집 2층 ‘모두의 거실’에는 주민들이 커피를 마시며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입주민 홍성준씨(55)는 “쪽방에서는 주인이 세탁기를 잠가놔서 여름에도 일주일에 한 번만 빨래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주민은 “30년간 감기에 걸린 적이 없는데 어제 에어컨 끄는 걸 잊어서 콧물이 난다”며 웃어 보였다. 주민들은 ‘내 방 꾸미기 콘테스트’를 열어 거실에 당선작을 걸어두는 등 방 꾸미는 재미도 느끼고 있다.
해든집은 재개발 대상지 세입자의 주거를 먼저 보장한 첫 사례로, 지난해 9월 남대문 쪽방 주민 142가구가 이주했고 다음 달 중순에는 나머지 공실 42가구가 추가로 입주할 예정이다. 각 방 면적은 14~20㎡이며, 주거비 부담도 크지 않다. 백고현씨(62)는 “쪽방에서는 방세 25만원을 내고도 에어컨이 없어 전기를 마음대로 못 썼지만, 여기서는 에어컨을 틀어도 월세와 관리비를 합쳐 이전과 비슷한 20만원 정도가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쪽방 주민들이 이주했을 뿐 경제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어서 기존 수급 자격은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서울의 다른 쪽방촌 주민들은 여전히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종로구 돈의동·창신동, 용산구 동자동, 영등포 쪽방촌 등 5개 쪽방촌에서는 주민들이 무상 설치된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문을 열어놓고 골목길에서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목격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다른 쪽방촌도 토지 문제와 개발 방식 등을 고려해 정비하고 있으며, 해든집과 같은 ‘선이주 후개발’ 방식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