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맛을 자산으로 바꾸는 장소의 힘
핵심 요약
지역 미식의 경쟁력은 땅과 사람의 손길이 결합한 대체 불가능성에서 나온다. 지리적표시제는 지역 고유의 맛과 이름을 보호하고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한다. 실제 품질과 고유성을 지키는 관리가 지역 브랜드의 지속성을 좌우한다.
지역 미식의 경쟁력은 음식점의 수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대신할 수 없는 맛과 경험에서 형성된다. 이를 만드는 핵심은 특정 공간의 토양·기후·지형과 생물, 오랜 시간 축적된 사람의 기술이 결합한 테루아다. 같은 품종과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생산된 장소와 재배·가공 방식이 달라지면 결과물의 맛과 향도 달라진다.
테루아는 자연환경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위도와 고도, 물과 토양 같은 조건에 지역민이 쌓아 온 재배법과 가공 지혜가 더해져 완성된다. 특정 갯벌의 짠맛, 산자락의 안개 속에서 자란 차의 향, 지역의 물과 기후가 좌우하는 발효 음식이 대표적이다. 이런 특성은 돈으로 사거나 다른 장소로 그대로 옮길 수 없어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된다.
공산품과 프랜차이즈 음식은 여러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생산할 수 있지만, 장소와 결합한 음식은 풍경과 공기, 생산자와 지역의 이야기까지 하나의 경험을 이룬다. 이 가치를 보호하는 장치가 지리적표시제다. 특정 지역의 특성을 살려 생산·가공한 상품에 지역명을 사용할 권리를 보장하며, 국내에서는 2002년 보성 녹차가 제1호로 등록된 뒤 이천 쌀과 횡성 한우, 순창 고추장 등으로 확대됐다.
지리적표시 등록 상품은 같은 품목의 비등록 상품보다 높은 가격을 받는 효과를 보였다. 보성 녹차는 등록 이후 이미지와 품질이 개선되고 차밭 관리가 재개되면서 재배 면적과 농가가 늘었으며, 녹차를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으로도 이어졌다. 다만 지역명만 붙인다고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실제 품질과 고유성을 유지하는 정직한 관리가 뒷받침돼야 장소의 이름이 생산과 관광을 키우는 자산으로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