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질서 재편에 흔들리는 미국의 주도권
핵심 요약
미국 중심의 중동 안보 질서가 이란의 부상과 동맹국들의 새로운 방위협력으로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석유·달러 체제와 이스라엘을 축으로 패권을 구축했지만 장기전과 잇단 철군으로 부담이 커졌다. 중동에서 발을 빼려던 미국은 가자지구와 이란 전쟁 속에서 관여가 깊어지는 동시에 주도권을 잃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질서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미국이 장기간 구축해 온 중동 주도권도 중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미국의 동맹인 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파키스탄이 금요일 새로운 상호방위협정에 참여하면서 미국 중심의 역내 안보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구체화했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에 집중하려 했지만 가자지구와 이란 전쟁을 거치며 중동 위기에 더 깊이 관여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국 중심 질서의 출발점은 1945년 2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이븐 사우드 국왕의 회담이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선언 11분 뒤 이를 승인했고, 미 중앙정보국은 1953년 아약스 작전으로 모하마드 모사데그 정부를 무너뜨렸다. 미국은 1956년 수에즈 위기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무력 개입을 막은 뒤 유럽 제국주의를 대신할 패권국으로 부상했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에는 이스라엘을 역내 핵심 대리 세력으로 세웠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과 석유 충격은 베트남전 후유증에 시달리던 미국에 반전의 계기가 됐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를 보장하고 석유 거래를 달러로 결제하는 페트로달러 체제를 출범시켰으며,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협상을 중재해 소련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석유 부국이 된 소련은 1980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영향력 확대에 자원을 소진했지만, 미국은 지식경제와 혁신, 정밀유도무기 개발에 힘을 실었다. 1980년대 유가 급락 뒤 소련 경제가 무너졌고, 1991년 걸프전과 소련 해체를 거치며 미국의 단극 질서는 정점에 올랐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확산과 2001년 9·11 공격은 이란과 이라크를 함께 고립시키려던 미국의 전략에 부담을 안겼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장기전을 치렀고, 2011년 이라크 철군 뒤에도 내전과 2014년 이슬람국가의 발흥을 막지 못했다. 이슬람국가는 영국 크기의 지역을 장악했다가 2019년 쇠퇴했으며, 아프가니스탄전은 2021년 8월 급박한 철군으로 끝났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전환과 2015년 이란 핵합의도 중동 부담을 줄이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핵합의를 폐기하고 아브라함협정을 추진한 뒤 대립은 심화했다. 달러와 중동 석유의 연결, 이스라엘 안보와 이란 체제 전복을 미국 패권의 조건으로 보는 시각이 지속되는 사이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통제력은 커졌고, 미국의 영향력은 오히려 약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