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이끈 주룽지 98세로 별세
핵심 요약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12일 베이징에서 병환으로 별세했다. 국영기업 구조조정과 중국의 WTO 가입을 주도하며 개혁·개방을 이끌었다. 강력한 반부패 행보와 엄격한 친인척 관리로 청백리의 상징으로 남았다.
중국의 경제개혁을 설계하고 집행한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12일 베이징에서 별세했다. 향년 98세다. 주 전 총리는 병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이날 오전 11시 6분 현지에서 숨을 거뒀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공동 명의로 부고를 발표하고 그를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로 평가했다.
1928년 10월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난 주 전 총리는 1951년 칭화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상하이시장에 임명돼 상하이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성장하는 초기 기반을 닦았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뒤 총리에 올라 2003년 초까지 재임했으며,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 속에서도 국영기업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주 전 총리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 협상을 사실상 총괄한 핵심 인물이었다. 시장의 대외 개방을 확대해 중국이 세계 경제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후 중국은 수출과 외국인 투자를 토대로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다. 강한 정책 추진력으로 ‘중국의 경제 차르’와 ‘철면 총리’로 불렸지만, 정작 본인은 이런 별칭에 기분이 좋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부정부패 척결과 친인척 관리에서도 엄격한 태도를 유지했다. 청렴한 관리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발언과 함께 탐관에게 99개의 관을, 자신에게 나머지 하나를 준비하라는 말로 강한 반부패 의지를 드러내 ‘현대판 포청천’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친지의 인사 청탁을 거부하고 공직에 나간 친인척을 승진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고향 공무원들이 모친 묘를 단장하려 하자 꾸짖고 친척들에게 처신을 경계하는 편지를 보냈다. 2003년 3월 퇴임한 뒤에는 공개 활동을 크게 줄였지만 개혁·개방과 반부패 정책에 대한 지지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