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룽지 별세…중국 시장경제 전환 이끈 개혁가
핵심 요약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1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국유기업 개혁과 푸둥 개발, WTO 가입, 아시아 금융위기 대응을 주도했다.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했지만 실업과 빈부격차 확대라는 그늘도 남겼다.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과 세계 경제 편입을 이끈 주룽지 전 총리가 12일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8세다. 장쩌민 집권기에 덩샤오핑이 설계한 개혁·개방 노선을 제도화한 그는 국유기업 구조조정과 군부의 경제활동 정리, 세계무역기구 가입, 아시아 금융위기 대응을 주도하며 중국 고도성장의 기반을 다졌다.
상하이 공산당 부서기와 시장, 당서기를 지낸 주룽지는 1990년 초 덩샤오핑에게 두 차례 개발 구상을 설명해 같은 해 4월 푸둥 개발 결정을 끌어냈다. 총리 재임 중에는 1999년 4월 중국 총리로서 15년 만에 미국을 찾아 WTO 가입 협상을 벌였고, 중국은 2001년 회원국이 됐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는 위안화 평가절하를 하지 않는 결정을 이끌어 홍콩과 주변국의 위기 확산을 억제하는 데 힘을 보탰다.
개혁 과정에서는 ‘큰 기업은 붙들고 작은 기업은 놓아준다’는 원칙 아래 방만한 국유기업을 정리했다. 군부대의 자립 경영 허용 이후 밀수와 이권 사업이 확산해 군이 거대 기업처럼 변하자 인민해방군 내부의 부패와 경제활동에도 칼을 댔다. 명나라의 청렴 관리 해서가 보여준 자세를 개혁의 본보기로 삼았으며, 1998년 3월에는 위험을 감수하고 국가를 위해 끝까지 전진하겠다는 각오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강한 추진력은 ‘철혈 재상’, ‘상하이의 고르바초프’라는 별칭으로 이어졌지만 개혁에는 그늘도 남았다. 국유기업 정리 과정에서 대량 실업이 발생했고, 시장경제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부의 집중과 계층·노동·소득 격차도 커졌다. 2003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공개 활동을 삼갔던 그는 2022년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 추진에 비판적인 원로로 다시 거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