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표준음을 세운 옥빛 돌악기 편경
핵심 요약
편경은 조선의 국가 의례 음악과 국악기 조율을 이끈 표준음 악기다. 세종 시기 국내 경석이 발견되면서 자체 제작이 시작됐고, 세종은 미세한 음의 오차까지 가려냈다. 김현곤 악기장이 복원한 제작 기술은 아들 김종민 보유자와 손자에게 전승됐다.
편경은 조선의 국가 의례 음악과 음률 체계를 바로잡은 기준 악기다. 소리를 내는 돌인 경석을 정교하게 다듬어 표준음을 제시했고, 다른 국악기를 조율할 때도 기준이 됐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숨겨야 할 악기로 다뤄졌으며, 이를 깨뜨린 사람에게 곤장 100대와 3년 유배를 내릴 만큼 귀중하게 보호됐다.
고려 때에는 송나라에서 편경을 들여왔지만 세종 시기 남양, 현재의 경기 화성 지역에서 경석이 발견되면서 국내 제작의 길이 열렸다. 박연이 만든 편경을 들은 세종은 한 음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렸고, 먹줄이 남아 있어 충분히 갈리지 않은 곳까지 정확히 짚었다. 편경 제작과 음률 정비 과정에서 세종의 뛰어난 청음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편경 하나에는 모두 16개의 옥빛 돌이 걸린다. 돌의 생김새는 한글 자음 ‘ㄱ’이나 한자 ‘八’을 닮았으며, 하늘이 굽어 땅을 감싼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대로 된 편경을 만들려면 좋은 경석을 골라내는 안목과 미세한 음 차이를 판별하는 귀, 돌을 거듭 갈며 음높이를 조절하는 손의 감각이 함께 필요하다.
한동안 끊겼던 제작 기술은 고 김현곤(1935~2026) 악기장이 복원했다. 그는 옛 문헌과 실제 악기를 다시 살핀 끝에 예순이 돼서야 복원에 성공했고, 좋은 경석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였다. 지난해 말 덕수궁 전시에서는 젊은 세대의 관심을 반기며 생의 마지막까지 제작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승자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으로 여러 무형유산이 단절 위기에 놓인 가운데, 그의 기술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아들 김종민 악기장 보유자와 손자에게 이어졌다. 부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무형유산 장인의 시연과 공연이 주목받은 만큼 편경의 청아한 울림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기반도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