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국회가 설계한 국가와 정치의 원형
핵심 요약
《국가의 탄생》은 제헌국회가 신생국의 제도와 의회정치를 구축한 과정을 복원한다. 국호와 경찰 조직, 경제 질서, 국민 개념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담겼다. 대통령과 국회의 견제·협력은 오늘날 한국 정치에 이어진 제도적 유산을 보여준다.
정치학자 강원택의 신간 《국가의 탄생》은 헌법과 정부조직조차 없던 1948년, 제헌국회가 대한민국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한 과정을 복원한다. 5월 10일 최초의 보통선거에는 전국 200개 선거구에서 948명이 출마했고, 제주 4·3의 영향으로 무효 처리된 북제주군 2곳을 뺀 198개 선거구에서 의원이 선출됐다. 같은 달 31일 문을 연 국회는 2년 동안 국가 건설과 의회정치의 출발을 함께 책임졌다.
국호를 정하는 과정부터 치열했다. 헌법 초안의 명칭은 ‘조선’이었지만 망한 왕조의 이름이라는 반론이 제기됐고, 국제적으로 알려진 ‘Korea’를 고려해 ‘고려공화국’도 거론됐다. ‘대한민국’의 ‘대’가 제국주의나 과도한 자존을 드러낸다는 비판까지 나온 끝에 표결로 현재의 국호가 확정됐다. 경찰 조직을 독립된 치안부로 둘지를 놓고도 안보 강화를 내세운 찬성론과 경찰국가를 우려한 반대론이 맞섰으며, 투표 결과 내무부 소속으로 정리됐다.
북한 공산체제에 반대하는 보수·중도 인사가 다수였지만 경제 질서에 관한 시야는 사회민주주의까지 열려 있었다. 전진한은 노동자와 자본가, 기업가의 합의를 통한 산업 부흥을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방안으로 봤다.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여에는 소수가 찬성했으나 회사 이익을 노동자와 나누는 방안에는 다수가 동의했다. 헌법 문구의 ‘인민’을 ‘국민’으로 바꾸는 과정에서도 국가 구성원과 자유·권리의 주체를 어떻게 표현할지 깊은 논쟁이 이어졌다.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에서도 견제와 협력이 함께 작동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헌국회 임기 동안 14차례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는 이 가운데 12건을 다시 의결했다. 이 대통령이 재임 중 국회에서 한 연설 25회 가운데 19회가 제헌국회 시기에 집중됐다. 법제사법위원회의 높은 인기와 20인 이상 교섭단체를 둘러싼 찬반 논의도 오늘날 정치의 원형을 보여준다. 책은 진영에 기대거나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고 논리와 품위를 지킨 당시 논쟁을 456쪽에 담았으며, 21세기북스가 3만2000원에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