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국회 무소속 의원들, 친일청산·개헌 요구…이승만 독재의 빌미
핵심 요약
제1·2대 국회에서 무소속 의원들은 전체 의석의 40~60%를 차지하며 친일청산, 내각제 개헌 등을 요구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대선을 앞두고 무소속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불법 비상계엄과 직선제 개헌을 강행했다. 무소속 의원들은 구락부를 결성해 집단 활동을 했으나, 이승만의 독재 강화로 정치적 입지가 축소됐다.

1948년 제헌헌법 공포 이후 6년간 한국 정치의 중심에는 무소속 의원들이 있었다. 제1대 국회에서 무소속 당선자는 85명으로 전체 200석의 42.5%를 차지했고, 제2대 국회에서는 126명으로 60%에 육박했다. 이들은 당시 현대적 정당 정치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약진했으며, 김구·김규식의 단독선거 보이콧과 한민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무소속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무소속 의원들은 친일청산과 반민특위 활동을 지지했고, 지방자치 조기 실시, 농지개혁의 지주층 편향 방지, 외국군 철수, 남북 협상, 내각제 개헌을 통한 대통령 견제를 주장했다. 이들의 정치적 입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위협으로 작용했다. 1950년 총선에서 이승만 지지 계열 당선자는 60명 미만에 불과했고, 무소속 중 지지자는 소수여서 간선제 대선에서 이승만의 재선이 불투명해졌다.
이승만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52년 전시 중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직선제 개헌을 강행했다. 이는 무소속 의원들의 견제를 무력화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편, 무소속 의원들은 개별 활동 대신 구락부 형태로 집단 행동을 펼쳤으며, 조소앙의 무소속구락부, 김약수의 동성회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당시 대중의 보편적 목소리를 반영하려 노력했지만, 이승만의 독재 강화로 그 영향력은 점차 약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