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사의에 겹친 조선의 ‘병을 든 퇴진’
핵심 요약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의를 밝혔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수용하지 않고 만류했다. 정 장관의 선택에는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둘러싼 소신과 여권 내 역할이 함께 얽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선시대 칭병사직은 은거와 항의, 정치적 압박, 실제 노환 등 서로 다른 목적으로 활용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건강 악화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 어렵다며 사의를 밝히면서 정치권의 시선이 그의 거취에 쏠렸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에 부정적인 소신과 여당의 추진 방침 사이에서 충돌을 피하고 대통령의 부담을 덜기 위한 선택이라는 해석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하지 않은 채 정 장관에게 버텨 달라고 공개적으로 당부했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로 만나 30년 동안 정치적 영광과 시련을 함께한 동지다. 정 장관은 친명계 좌장으로 정권 창출에 앞장선 핵심 측근이기도 하다. 이 같은 오랜 인연과 여권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이번 사직 의사는 단순한 인사 문제로 정리되기 어렵다. 대통령의 만류가 이어질지, 정 장관이 뜻을 거둘지가 향후 행로의 핵심 변수다.
병을 내세워 관직에서 물러나는 ‘칭병사직’은 조선 정치에서도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됐다. 김인후는 인종 사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해 목숨과 지조를 지켰다. 곽재우는 의병장 김덕령이 정치적 모함으로 제거된 뒤 선조와 광해군이 내린 벼슬을 거듭 사양하고 산속에 은거해 정치적 공격을 피했다. 송시열은 왕과 정책이 충돌할 때마다 늙고 병들었다며 낙향하는 방식으로 압박했고, 대체로 정치적 입지를 넓혔지만 숙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하다 사약을 받았다.
황희의 사직 청원은 실제 노환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달랐다.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그는 70세 무렵부터 10여 차례 물러나겠다고 청했으나 세종은 지팡이와 어의를 보내고 재택근무까지 허용하며 반려했다. 황희는 87세에야 사직을 허락받았고 3년 뒤 세상을 떠났다. 정 장관의 사의가 거듭 만류됐던 황희의 사례처럼 이어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권력과의 거리 조절, 정책적 이견, 건강 문제가 함께 얽힌 이번 선택은 오랜 칭병 정치의 여러 성격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