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박물관의 선택적 기억, 시민들이 묻다
핵심 요약
나가사키 원폭 박물관과 서울 전쟁기념관이 자국의 전쟁 가해를 축소하거나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용산의 베트남전 전시에 항의한 시민들은 벌금형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박물관의 선택적 기억을 둘러싼 논쟁이 전쟁 책임과 공론장의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 원폭 박물관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이 자국의 전쟁 가해를 축소하거나 미화한다는 논란에 놓였다. 나가사키시는 약 30년 만의 대규모 전시 개편을 추진하면서 ‘난징 대학살’을 ‘난징 사건’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와 검정 교과서 표현을 반영했다는 설명이 나왔지만, 전쟁 범죄의 성격과 책임을 흐릴 수 있다는 비판이 일본 안팎에서 제기됐다. 중국 외교부도 지난 6월5일 공식 브리핑을 통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서울 전쟁기념관의 베트남전쟁 전시는 2018년 해외 파병실 리모델링을 거치며 한국군 파병을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으로 강조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됐다. 채명신 장군의 훈령인 “한국군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문구도 비중 있게 배치됐다.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관한 인식이 확대되고 최근 사법부가 학살의 진실과 책임을 인정했지만, 전시에서는 이를 반영하려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쟁 가해를 전시에서 밀어낸 사례는 일본에서 먼저 반복됐다. 1991년 문을 연 오사카 국제평화센터는 난징 대학살과 식민지 지배, 일제 강제동원 등 일본의 침략과 가해까지 함께 다뤘다. 이후 보수 세력이 이를 ‘자학 사관’이라고 비판하면서 개편 논의가 이어졌고, 2015년 리뉴얼 뒤에는 일본의 가해 역사가 전시에서 사라졌다. 한국에서도 과거사 청산을 통해 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규명돼 왔지만, 베트남전쟁 관련 공공 전시는 이런 역사 민주화의 흐름과 동떨어진 상태로 남았다.
시민모임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는 베트남전 전시물에 ‘거짓’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는 비폭력 직접 행동을 벌였다. 전쟁기념관은 전시물을 훼손하지 않은 참여자들을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고소했고, 벌금형을 받은 이들은 최근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박정원 작가는 전시 ‘반전 시도’에서 이 행동을 오마주한 작품 ‘거짓 기념’을 선보이며 전쟁기념관을 망각을 작동시키는 거대한 기계로 표현했다. 나가사키와 용산에서 이어지는 논쟁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관한 공론장의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