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탐험의 기억을 품은 처치의 ‘빙산’
핵심 요약
처치가 1861년 완성한 작품은 처음 ‘북쪽’이라는 제목으로 남북전쟁과 연결됐다. 런던 전시를 앞두고 제목을 ‘빙산’으로 바꾸고 부러진 돛대를 덧그려 새로운 서사를 만들었다. 동일한 풍경은 미국의 전쟁, 영국의 북극 탐험, 오늘날의 대자연으로 서로 다르게 읽혔다.
미국 화가 프레더릭 에드윈 처치가 1861년 완성한 ‘빙산’은 푸른 얼음과 차가운 바다가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이다.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에는 서늘한 풍경 자체가 먼저 눈길을 끌지만, 이 그림은 전시된 시대와 장소가 달라질 때마다 전쟁과 탐험의 기억을 새롭게 품었다. 지금의 제목과 화면도 처음부터 확정돼 있던 것은 아니었다.
처치는 북극 여행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한 뒤 당초 제목을 ‘북쪽’으로 정했다. 전시 준비 도중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제목은 북군을 연상시키는 정치적 의미를 얻었다. 처치는 입장료 수익금도 북군 병사 가족을 돕는 기금에 기부했다. 유명 화가의 신작을 높이 평가한 반응과 함께, 사람이나 동물, 뚜렷한 사건이 없어 관람객이 감정을 이입할 서사가 부족하다는 불만도 나왔다.
완성 2년 뒤 영국 런던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품은 달라졌다. 처치는 제목을 ‘북쪽’에서 ‘빙산’으로 바꾸고 전경에 난파선에서 남은 것으로 보이는 부러진 돛대를 덧그렸다. 남북전쟁을 가리키던 의미가 걷힌 자리에 인간의 흔적을 암시하는 최소한의 이야기가 들어온 것이다. 영국 관객들은 이 돛대를 북극 탐험 도중 실종된 프랭클린 탐험대의 비극과 연결해 받아들였다.
런던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은 현지 사업가에게 판매됐다. 미국 관객에게는 남북전쟁의 북쪽을 환기했던 풍경이 영국에서는 실종된 탐험대의 기억을 불러냈고, 오늘날에는 화면을 압도하는 대자연이 중심에 놓인다. 제목과 세부 묘사, 관객이 처한 시대가 해석의 방향을 바꿨지만 빙산 자체는 처음부터 인간의 사정과 무관하게 떠 있었다. 변화한 것은 대상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