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로 복원한 김선우와 전남 유격대의 실체
핵심 요약
김선우의 생애와 전남 유격대 활동을 다룬 첫 단행본이 출간됐다. 책에는 관련 자료 40여 점과 가족·동료의 증언, 편지·연보·판결문이 담겼다. 5천명 넘는 대원을 지휘했던 김선우의 역할과 당시 호남 유격전의 규모를 기록으로 복원했다.
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인 황광우 작가가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선우(1918∼1954)의 생애를 추적한 첫 단행본 ‘빨치산 리포트’를 다큐북스에서 펴냈다. 1951년 8월 지리산에 도착한 이현상의 남부군이 400명 규모였던 데 비해, 화순 백아산의 김선우는 5천명이 넘는 유격대원을 지휘했다. 책은 이현상이 상징적 인물이었다면 실제 전남 유격대의 중심에는 김선우가 있었다는 점을 조명한다.
집필에는 1996년 발간된 ‘빨치산 자료집’을 비롯해 관련 서적과 논문, 사진 등 40여 점이 활용됐다. 황 작가는 김선우의 가족과 동료를 만나 증언을 듣고 활동지를 직접 답사했다. 자료마다 수치가 달랐던 빨치산 사망자 현황을 정리하고, 김선우가 부사령관 오금일에게 보낸 편지와 연보, 판결문도 부록에 담았다. 1951년 11월 27일자 편지에는 잇따른 자수와 적에 대한 과소평가, 물자 부족, 지하조직 구축 방안 등 당시의 열악한 상황이 드러난다.
김선우는 1918년 5월 전남 보성군 웅치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무신 가게와 평양·부평의 군수공장에서 일한 뒤 1945년 부평노동자위원회와 조선공산당 부평구역 조직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포고령 위반으로 두 차례 수감된 그는 1949년 와해 위기에 놓인 전남도당을 복구하려고 장흥 유치로 이동했다. 한국전쟁 중 전남도당이 백아산에 거점을 마련한 뒤인 1950년 10월 5일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부가 독자적으로 창설됐고, 김선우가 총사령관을 맡았다.
김선우는 광양 백운산과 곡성 봉두산 등에서 유격전을 이어갔으며, 1952년 11월 백아산을 오금일에게 넘기고 백운산으로 이동했다. 1953년 5월 전남도당 위원장에 올랐지만 1954년 4월 5일 백운산 폐광에서 진압군의 총탄에 숨졌다. 1951년 2월부터 12월까지 사살된 빨치산 3만9544명 가운데 호남 지역은 2만4331명이었고, 1953년 7월 생존자는 전남 400명을 포함해 1천여 명이었다. 책은 군경의 학살을 피하거나 이승만 정권에 반감을 품고 입산한 사람들까지 이끌었던 김선우의 행적을 기록으로 복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