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에도 무르익는 한여름의 풍경
핵심 요약
입추에도 강한 더위 속에서 열매와 곡식, 여름꽃이 무르익고 있다. 외가의 음식과 물놀이에 얽힌 어린 시절의 여름은 바쁜 현재와 대비된다. 목백일홍과 매미, 소년들의 모습은 한 번뿐인 계절의 생명력과 환희를 드러낸다.
입추를 맞았지만 한여름의 기세는 여전히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강한 햇빛에 풍경은 뿌옇게 번지고, 버찌나무 잎 사이의 열매는 검게 익어간다. 텃밭에서는 토마토가 둥글게 여물고 옥수수는 어른 키만큼 자랐다. 산채비빔밥집 주차장의 나무 그늘에는 어른 서넛이 담배를 피우며 더위를 피하고, 매미 소리가 이어지는 등산로에는 낯선 사람이 산을 향해 걷는다.
여름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과일과 물놀이, 외가의 저녁 풍경이 함께 남아 있다. 갈참나무의 진액을 빠는 풍뎅이를 잡으러 갔다가 나뭇가지에 긴 몸을 늘어뜨린 뱀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모깃불을 피운 마당 평상에서는 애호박을 넣은 수제비를 먹었고, 찬 우물에 담가 둔 샛노란 참외와 찐 옥수수를 맛보다 외할머니 무릎에서 잠들었다. 이제는 모두가 바빠져 그런 정취를 누리기 어려워졌다.
무더위가 깊어진 요즘에는 열대야로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고, 낮이면 졸음을 달래며 소설이나 시를 읽는다. 이성복의 시 「그, 여름의 끝」에 등장하는 나무 백일홍은 거듭된 폭풍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붉은 꽃을 매단 존재로 그려진다. 백일을 견딘다는 이름을 얻은 목백일홍의 맵고 화사한 빛은 절망을 지나 끝내 버티는 여름의 생명력과 맞닿아 있다.
절기상 입추부터 입동까지는 가을이지만 더위는 아직 물러서지 않았다. 말복을 지나 칠월칠석 무렵 비가 내리고 나서야 기세가 꺾일 것으로 여겨진다. 먼저 세상에 온 외할머니와 외삼촌들은 떠났고, 뒤에 온 이들이 남아 삶을 이어간다. 목백일홍이 만발하고 매미가 요란하게 우는 가운데 반바지 차림의 소년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간다.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계절의 환희가 생명들의 소란과 분주함 속에서 무르익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