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에 다시 선 서희, 강동 6주를 바라보다
핵심 요약
이천시에 서희의 외교적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60년 만에 새로 세워졌다. 서희는 993년 거란 장수 소손녕과 담판해 전쟁을 막았다. 고려는 협상을 통해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확보했다.
고려의 외교관 서희가 거란과의 담판으로 전쟁을 막고 영토까지 넓힌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경기 이천시에 새로 세워졌다. 서희의 고향인 이천에 60년 만에 다시 건립된 동상은 그가 확보한 강동 6주가 자리한 방향을 바라보도록 조성됐다. 칼과 창이 아닌 대화와 지혜로 위기를 돌파한 역사적 성과를 형상화한 것이다.
993년 거란은 기마와 궁술에 능한 80만 대군을 앞세워 고려 국경을 무너뜨렸다. 서희는 적장 소손녕을 직접 만나 협상에 나섰고, 두 나라가 동등하다는 이유로 절을 하라는 요구부터 거부했다. 이어 거란이 송나라와 가까이 지내는 고려를 압박하면서도 실제로는 고려와 우호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의도를 파악해 담판의 주도권을 잡았다.
당시 거란은 중국 전역으로 영토를 넓히려 하며 송나라와 대립하고 있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서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달갑게 여기지 않아 거리를 두는 한편 송나라와 가까이 지냈다. 거란은 고려가 송나라와 연대해 자신을 공격하는 상황을 막으려 침입했으며, 이러한 이해관계는 서희가 군사 충돌 대신 외교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서희는 압록강 동쪽의 여진 세력을 몰아내고 그 지역을 고려 영토로 인정하면 거란과 교류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고, 소손녕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고려는 전쟁을 피하는 동시에 흥화진·용주·통주·철주·귀주·곽주로 구성된 강동 6주를 확보했다. 새 동상은 국가 간 의견 차이를 직접 협상해 결론을 내는 외교 담판이 국경의 위기와 영토 문제를 함께 풀어낸 성과를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