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동물의 눈으로 마주한 존재의 슬픔
핵심 요약
이원이 8년 만에 일곱 번째 시집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을 출간했다. 낯선 동물과 반복되는 ‘작은’의 이미지를 통해 존재와 지구의 원형적 슬픔을 그렸다. 시적인 상태를 모든 생물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본바탕으로 바라봤다.
1992년 등단한 시인 이원(58)이 8년 만의 일곱 번째 시집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차갑고 이지적인 언어로 한국 모더니즘 시의 흐름을 이어온 그는 이번 시집에서 인간에게 겹겹이 쌓인 세상의 외피를 걷어내고, 누구나 태어날 때 지녔던 시적인 본바탕과 깨끗한 아름다움을 들여다본다. 서울예대 교수인 그가 학생과 젊은 시인을 부르는 말인 ‘애기’도 여리고 순진한 존재 상태를 가리킨다.
시집 속 ‘애기’는 동그란 눈의 산양과 눈을 껌벅이는 낙타, 수풀에 웅크린 고양이, 심해에서 솟구치는 분홍빛 생물로 나타난다. 시를 쓰며 뒤따라온 이 낯선 동물들은 인간의 모습을 잠시 벗게 하고, 아직 훼손되지 않은 무언가를 이미지로 보여준다. 그들과 눈을 맞추는 장면 아래에는 감정의 차원을 넘어 존재 자체에 깃든 원형적 슬픔이 흐른다. 시인은 시집을 묶는 과정에서 작품 전체를 감싼 슬픔의 성격을 뒤늦게 자각했다.
지난 8년은 공동체의 윤리와 대립, 통제하기 어려운 지구의 변화 징후를 마주한 시간이었다. ‘아직, 지구에서’에는 망가진 지구의 일상과 광부 엄마를 찾으려는 마음이 놓였고, 그 바탕에는 인간이 지구를 함부로 다뤘다는 슬픔이 자리한다. 인간의 크기가 지나치게 커졌다는 문제의식은 ‘작은’이라는 시어의 반복으로 이어졌다. ‘작은 사람 공동체’에서는 냅킨을 거듭 접으며 기다리는 인물을 통해 더 작아진 자리에서 순진하게 슬퍼하려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원에게 시적인 상태는 익숙한 평균과 균형점을 벗어나 세계가 갑자기 열리는 순간이다. 그는 형상의 외피를 끝까지 깎아 순수한 알맹이와 작은 원형에 닿는 일을 시의 모험으로 여긴다. 새벽마다 애정하는 책 한 쪽을 읽고 드로잉과 몇 줄의 글로 시적인 방향을 연 뒤, 산책하거나 편의점의 새 빵을 바라보며 일상에 빈틈을 남긴다. 시는 일부에게만 허락된 감각이 아니라 모든 생물의 기본값이며, 내면의 시가 깨어날 때 가장 깨끗한 아름다움도 발견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