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승의 1911년 한글 가사, 유일본 공개
핵심 요약
이건승이 1911년 서간도 망명 직후 쓴 ‘서행별곡’ 유일본이 공개된다. 141장에는 망명 과정의 두려움과 고통, 국권 회복을 향한 희망이 담겼다. 국립중앙도서관은 함께 기증된 강화학파 자료의 해제를 오는 9월까지 공개할 예정이다.
한일강제병합 뒤 서간도로 망명한 강화학파 유학자 경재 이건승(1858~1924)이 1911년 3월 지은 한글 가사 ‘서행별곡’이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망명길에서 겪은 비통함과 독립의 염원을 기록한 이 작품의 유일본을 후손인 이겸주 울산대 명예교수의 뜻에 따라 기증받았다. 국권 상실 직후 작성된 시기상 가장 이른 망명가사로 평가되는 자료다.
전체 141장으로 구성된 서행별곡의 도입부에는 망명을 결심한 계기와 후학을 위한 학교 교육을 일찍 시작하지 못한 아쉬움이 담겼다.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이동하며 마주한 문화유적에 대한 감회와 서구 문물의 유입을 바라보는 우려도 이어진다. 후반부에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향하면서 느낀 일제에 대한 두려움과 타국에서의 고통, 서간도 도착 뒤 국권 회복의 희망과 냉엄한 현실 사이에서 겪은 복잡한 심경이 드러난다.
망명가사는 일제강점기 만주 등으로 떠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이 독립에 대한 열망과 사회 참여 의식을 담아 쓴 글을 뜻한다. 독립운동가 집안 여성들도 남편이나 부친의 뜻, 현실적 한계에서 비롯된 안타까움을 여러 작품으로 남겼다. 이건승은 을사조약 체결 뒤 자결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후 강화도에 계명의숙을 세워 교육구국 운동을 펼쳤다.
이건승이 속한 강화학파는 정제두가 1709년 강화도 하곡에 정착한 뒤 형성됐으며, 강화학파의 마지막 인물로 꼽히는 담헌 정인보(1893~1950?)가 그의 제자였다. 서행별곡은 당시 지식인이 마주한 내적 고뇌와 외적 고난을 통해 애국지사들의 국가관과 주체 의식을 살필 수 있는 역사 자료로 평가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은 함께 기증받은 ‘초원담로’와 ‘두시약설’ 등 강화학파 관련 자료의 목록과 내용 설명을 담은 해제를 오는 9월까지 먼저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