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11기에서 이어진 군부 권력의 계보
핵심 요약
육사 11기는 한국전쟁으로 학교가 단절된 뒤 출범한 첫 4년제 정규 과정이었다. 강한 기수 의식으로 결속한 일부 구성원은 하나회와 군부 쿠데타의 중심에 섰다. 육사의 초기 역사와 11기의 행적은 12·3 내란으로 이어진 군 내부 전통을 되짚게 한다.
육군사관학교 11기는 전쟁으로 선배 생도들이 전선에 투입되고 학교가 휴교한 뒤 처음 출범한 4년제 정규 과정이었다. 전두환·노태우·정호용·김복동 등이 포함된 이 기수는 위에 재학 중인 선배가 없는 환경에서 출발했고, 강한 엘리트 의식과 결속력을 지닌 배타적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후 일부 구성원은 군내 사조직과 두 차례 쿠데타, 광주의 비극에 깊이 관여했다.
정부는 1951년 10월31일 국본 일반명령 제163호를 통해 휴교 중이던 육사를 경남 진해에서 4년제 정규 과정으로 다시 열었다. 그러나 육군본부가 1955년 4월27일 군 역사의 연속성을 이유로 정규 과정 1기의 명칭을 11기로 정하자 생도들은 명예와 자부심이 무너졌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백운택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결하겠다는 취지의 극단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육사의 뿌리는 미 군정이 1945년 12월5일 세운 군사영어학교다.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창설 과정에서 한미 간 언어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옛 일본군·만주군 출신자들이 영어 속성교육을 받고 장교로 임관했다. 학교는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와 조선경비사관학교를 거쳐 1948년 9월 김종필이 속한 8기부터 육군사관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8기와 9기의 교육 기간은 각각 22주와 23주에 그쳤다. 1949년 2년제로 입교한 10기는 졸업 전에 전쟁터로 향했고, 1950년 6월1일 4년제로 처음 입학한 생도 2기도 입교 24일 만에 생도 신분으로 전선에 배치됐다. 개전 사흘 만에 학교가 휴교하면서 생긴 단절 뒤 출범한 11기는 5·16 쿠데타 때 후배들의 지지 행진을 이끌고 하나회를 결성했으며, 그 일부는 12·12 쿠데타와 광주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군부 권력의 중심에 섰다. 이 과정은 12·3 내란과 군 내부의 부정적 전통이 어떤 관계인지 되짚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