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법원, 당사자 중심 ‘쉬운 판결문’ 확대
핵심 요약
스페인 대법원이 장애가 있는 성범죄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에게 쉬운 판결문을 제공하도록 했다. 스페인 법은 장애인 등에게 판결문과 사법 문서를 쉬운 읽기 형태로 교부하도록 규정한다. 유럽과 유엔은 결론뿐 아니라 판단의 배경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법 문서의 접근성을 확대하고 있다.
스페인 대법원이 2023년 5월 성범죄 사건 판결(STS 339/2023)을 내리면서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 브라우리오와 선천적 청각장애 및 인지장애를 겪는 피고인 시프리아노 모두에게 ‘쉬운 읽기’ 형식의 판결문을 제공하라고 명령했다. 범죄 피해자뿐 아니라 피고인도 재판 결과와 판단 이유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가 주문에 반영됐다.
시프리아노는 청각장애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정이 고려돼 형사책임을 면하는 무죄 취지의 판단을 받았지만, 보호관찰을 비롯한 보안처분은 부과됐다. 재판부는 당사자들이 결정과 근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사법행정기관과 협력하는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별도의 이지리드 판결문을 작성하도록 했다. 신청이 없어도 당사자의 필요를 살핀 법원이 직접 제공을 결정한 사례다.
법적 토대는 2021년 개정·시행된 스페인 민사소송법과 2022년 발효된 평등대우 및 차별 금지법이다. 민사소송법 제7조2는 발달장애인 등이 소송당사자일 때 판결문과 사법 통지, 소송 서류를 쉬운 읽기 요약본으로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필요하면 재판부가 직권으로 교부하도록 한다. 차별 금지법 제19조도 취약 집단이 사법절차 정보에 접근하고 원활히 참여하도록 지원할 의무를 담고 있다.
유럽의 쉬운 판결문은 결론 전달을 넘어 판단의 배경과 맥락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다. 영국 가정법원의 피터 잭슨 판사는 2017년 친부와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만 14세 샘의 뜻과 달리 이민 청구를 기각하면서 ‘친애하는 샘에게’라는 편지 형식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친부에게 구체적인 이민·생활 계획이 없고 반대 의견을 지나치게 모욕한 점 등을 쉬운 언어로 풀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도 2014년과 2018년 권고에 이어 2020년 사법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내고 수사부터 판결문 교부까지 당사자 눈높이에 맞춘 문서 제공을 사법 당국의 의무로 명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