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비편의 주인은 누구인가…제작·파괴설 격론
핵심 요약
경주 월성에서 83년 간격으로 발견된 두 비편의 제작 주체를 놓고 고구려군 건립설과 신라인 제작설이 맞섰다. 서기 400년 원정 기념비와 464년 신라의 의도적 파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시기 특정에는 반론도 나왔다. 월성 비편은 광개토대왕비 및 포항중성리신라비와의 서체 비교를 통해 신라 서예사의 흐름을 밝힐 자료로 평가된다.
1937년과 2020년, 83년의 시차를 두고 경북 경주 월성에서 나온 두 비석 조각의 제작 주체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한다. ‘경주 월성 서편 수습 비편’은 접합 뒤 가로 27.2㎝, 세로 16.6㎝ 크기로 확인됐으며, 광개토대왕비와 닮은 글씨 때문에 고구려 원정군의 석비인지 고예를 익힌 신라인의 작품인지 의견이 맞서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연구소, 한국고대사학회는 13일 공동 학술대회를 열어 비편의 성격과 역사적 가치를 논의한다.
기경량 가톨릭대 교수는 글자의 형태가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에 해당한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서기 400년 광개토대왕의 신라 구원 원정에 참여한 고구려군이 세운 비의 일부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견해가 입증되면 비편은 현존 최고(最古)의 고구려 석비가 된다. 고대 원정군에 석공이 동행한 사례와 중국식 석비를 떠올리게 하는 매끄러운 표면도 근거로 들었다. 평양 지역의 중국계 고구려인이 원정에 참여해 제작을 이끌었을 가능성도 함께 제기됐다.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은 고구려가 신라의 복속과 조공을 과시할 목적으로 왕경에 세운 정치적 기념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두 조각의 접합면이 빈틈없이 맞고 인공적인 타격 흔적이 남아 있어 의도적인 파괴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464년 신라 안의 고구려인이 몰살된 이른바 ‘수탉 사냥’ 사건 때 비가 깨졌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안정준 서울시립대 교수는 충주고구려비 등은 영역 변동 뒤에도 파괴되지 않았다며 파괴 시점과 이유를 464년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정현숙 전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제작 주체를 달리 봤다.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난 고예를 배운 신라인이 5세기에 이를 변용해 쓴 글씨로 추정했다. 두 비가 같은 고예 계통에 속하지만 자형과 결구, 필법이 서로 다르고, 월성 비편에는 해서적 요소가 많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501년 포항중성리신라비와의 서체적 연관성도 확인됐다. 비의 국적을 확정하지 못하더라도 6세기 신라 글씨의 뿌리를 내부에서 살필 수 있어 신라 서예사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