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화면에 포개진 세계와 개인의 불안
핵심 요약
함양아가 원형 스크린과 8채널 영상으로 현대사회의 복잡한 관계망을 펼쳐 보인다. 신작은 신자유주의부터 기후위기까지의 거대 흐름과 개인의 일상·고통을 교차시킨다. 전시는 듣기와 곁에 머물기를 예술가의 역할로 제시하며 10월 4일까지 이어진다.
함양아의 개인전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신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은 전시장을 두른 거대한 원형 스크린에 8채널 영상을 펼친다. 정부 기관과 중앙은행, 고층 빌딩, 기업 로고, 회의 중인 인물과 시위대가 맞물리며 정치·자본·노동·일상이 얽힌 오늘의 세계를 구성한다.
22분 분량의 영상은 넘실대는 바다와 파묘를 촬영한 장면으로 출발한다. 장례 행렬이 파노라마 안으로 들어서면 197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의 부상부터 세계화와 금융화, 디지털 혁명, 팬데믹과 기후위기까지 이어지는 사회 풍경이 열린다. 탄생과 죽음, 일상과 노동도 그 안에서 교차하며 개인의 고통을 여러 원인과 결과가 연결된 관계망 속에 놓는다.
이 프로젝트는 2018년부터 금융·정치·기술·교육·노동 분야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류·추상화해 온 장기 연구다. 인물과 건축물, 각종 기호를 겹친 무빙 이미지 콜라주는 버전을 거치며 사회구조와 개인의 관계를 추적했다. 4.0은 시장과 제도 중심의 거시적 시야에서 더 나아가 그 흐름이 인간과 생태계에 남긴 흔적까지 살핀다. 멀리서는 풍속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여러 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 오픈 월드를 연상시킨다.
작업의 출발점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뒤 시스템의 붕괴와 개인·공동체의 고통을 마주하며 품었던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 있다. 전시장에는 그 궤적을 보여주는 ‘잠’과 ‘주림 2.0’, 세계 각지 개인의 독백을 거대한 서사에 잇는 신작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도 함께 놓였다. 바다에서 시작해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순환 구조는 단선적인 진보와 다른 질서를 생각하게 하며, 불확실한 세계에서 타인의 말을 듣고 불안 곁에 머무는 예술의 역할을 드러낸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