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으로 변질된 인문학, 비판 기능을 잃다
핵심 요약
인문학이 비즈니스와 미래 예측의 도구로 소비되며 비판과 성찰의 기능을 잃고 있다. 강연·방송·기업 행사의 보상 구조는 분석보다 희망과 권위의 언어를 부추길 수 있다. 인문학의 역할은 미래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살펴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있다.
사회와 인간을 성찰하는 인문학이 사업의 성과나 미래 예측을 위한 도구로 소비되면서 본래의 비판 기능이 흐려지고 있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피는 작업보다 ‘통찰’과 ‘혜안’을 앞세운 낙관적 전망이 주목받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는 곧바로 완성된 대안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뒤따른다.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 개선을 계속 모색하는 과정도 인문학적 실천에 포함된다. 능력주의는 신분제보다 진전된 체계지만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 대학 이름을 기준으로 우월감과 열등감을 나누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어떤 제도도 완전하지 않은 만큼 성찰과 수정은 반복돼야 하지만, 대중 강연과 방송에서는 논쟁보다 청중이 원하는 희망의 언어가 선택되기 쉽다.
생계가 불안정한 작가에게 강연과 방송, 기업 행사는 현실적인 수입원이 된다.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출연과 섭외가 이어지고 기업 강연에서는 높은 보수와 의전도 제공된다. 이 과정에서 ‘새 문명’과 ‘전환’, ‘선도’ 같은 표현이나 근거가 부족한 애국주의가 분석을 대신하면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멘토와 추종자의 관계로 바뀔 수 있다. 미래 투자를 명분으로 돈을 요구하거나 모호한 직함으로 권위를 세우는 행태까지 나타난다.
2014년 인문학 경영을 강조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주문했던 한 기업 회장은 이듬해 역사책 읽기와 글쓰기, 토론을 실천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10여 년 뒤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건을 사과하는 과정에서도 광주를 조롱하는 표현을 되풀이했다. 자유와 공정, 권리를 특권과 차별의 논리로 바꾸는 순간 인문학은 배제의 도구가 된다. 인문학의 역할은 미래를 단정하는 예언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의 방향을 제안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