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에 새겨진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
핵심 요약
추사 김정희 탄생 240주년을 맞아 예산의 추사기념관이 확장·이전해 다시 문을 열었다. 추사 고택과 백송, 화순옹주홍문에는 김정희 가문과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유산이 남아 있다. 화암사와 오석산의 암각문은 옹방강과의 교류 및 소봉래를 이상향으로 삼은 추사의 뜻을 드러낸다.
추사 김정희 탄생 240주년을 맞아 충남 예산에서 그의 삶과 예술을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는 공간이 새 단장을 마쳤다. 2008년 건립된 추사기념관은 확장·이전을 거쳐 지난 7월 11일 다시 문을 열었다.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실, 추사체 쓰기와 그림·탁본을 경험하는 체험실을 갖췄으며, 개관 기념전 ‘추사, 요동을 가다’도 진행 중이다.
기념관 지하 출입구 밖에는 김정희가 1809년 연경에서 가져온 씨앗을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 앞에 심은 예산용궁리백송이 서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국내 다섯 그루의 백송 가운데 하나로, 수령은 약 200년이고 높이는 10m에 이른다. 인근 화순옹주홍문에는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남편 김한신의 합장묘, 불타 사라진 재실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영조가 김한신에게 내린 추사 고택은 본래 53칸 규모였으나 현재 솟을대문과 사랑채, 안채, 영당이 보존돼 있다. 기둥마다 힘 있고 다양한 서체의 주련이 걸렸고, 사랑채 앞 해시계 받침 돌기둥에는 김정희의 아들이 쓴 ‘석년’이 새겨졌다. 안채에서는 두부·오이·생강·나물로 차린 밥상과 부부·자녀·손자가 모인 자리를 최고의 즐거움으로 표현한 추사의 만년 글씨를 만날 수 있다.
고택에서 약 1.2㎞ 떨어진 화암사는 김정희 가문의 원찰이다. 제주 유배 중 쓴 ‘화암사중수상량문’과 ‘무량수각’, ‘시경루’ 현판도 이곳을 위해 마련됐다. 대웅전 뒤 병풍바위에는 옹방강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천축고선생댁’과 ‘시경’이, 500m가량 더 간 쉰질바위에는 ‘소봉래’가 새겨져 있다. 명문가의 종손으로 성장한 그는 유배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서예와 금석학에 깊이 통달했고, 71세에 과천에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