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서석지 상량문서 1645년 조성 단서 확인
핵심 요약
영양 서석지의 연못을 1645년에 조성하고 이름 붙였다는 상량문 기록이 확인됐다. 새 기록은 기존 1613년 조성설과 32년 차이가 있어 정확한 의미를 추가로 검토해야 한다. 영양군은 서석지와 경정의 변천사를 재정리해 세계유산 등재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영양 서석지의 조성 시점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 정자 부속채 상량문에서 확인됐다. 문서에는 1645년에 못을 파고 서석지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에 알려진 1613년보다 32년 늦은 시점으로, 영양군 산촌생활박물관이 진행한 세계유산 가치 발굴 기초연구 과정에서 발견됐다.
조사팀은 서석지의 정자 경정에 딸린 자양재에 보관돼 있던 주일재 상량문 3점을 조사했다. 가장 이른 상량문은 정영방의 손자인 눌재 정요천이 지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문서의 ‘歲乙酉 鑿斯池名曰瑞石’이라는 구절은 을유년인 1645년에 연못을 파고 서석지로 명명했다는 뜻이다. 현존 문서는 1919년 주일재 중수 때 후손들이 선대의 원문을 보고 옮겨 적은 것으로 전해진다.
서석지는 조선 중기 학자 석문 정영방이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마련한 별서 정원이다. 자연 암석인 서석을 중심으로 연못과 정자, 주변 경관을 배치한 대표적 조선시대 별서 정원으로 꼽힌다. 정영방은 1608년부터 연당에 별서를 두고 고향 예천을 오갔으며, 병자호란을 피해 다시 연당에 들어온 뒤 별서 곁에 경정을 짓고 정원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613년 조성설을 입증할 구체적인 문헌은 확인되지 않았다.
1645년 기록이 서석지 전체의 최초 조성을 뜻하는지, 현재 연못을 새로 만들거나 정비한 시점을 가리키는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상량문에는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경정 일대의 중수와 보수 과정도 담겨 있어 서석지가 후손들의 관리 속에서 계속 변화해 온 정원임을 보여준다. 경정이 19세기에 새로 지어졌다는 의문을 검토할 단서도 포함됐다. 영양군은 조성 과정과 변천사를 다시 정리해 세계유산 등재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