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단종을 덮친 숙부의 칼날
핵심 요약
열두 살에 즉위한 단종은 가까운 왕실 어른 없이 고명대신들의 보좌를 받았다.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권람 등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해 김종서와 안평대군 측에 맞섰다.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를 습격하면서 계유정난이 시작됐다.
지난 6일 방송된 ‘홍위, 노산, 단종-왕의 이름을 찾아서’ 편은 열두 살에 조선의 여섯 번째 임금이 된 단종과 왕권을 향해 움직인 숙부 수양대군의 대립을 조명했다. 프로미스나인 이채영과 가수 적재가 이야기 친구로 출연했고, 장항준 감독이 깜짝 이야기꾼으로 나섰다. 방송은 준비된 군주 문종의 이른 죽음에서 출발해 1453년 계유정난이 벌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짚었다.
문종은 여덟 살에 세자가 된 뒤 29년간 왕세자 교육을 받았고, 즉위 7년 전부터 세종을 대신해 국정을 처리했다. 훈민정음 창제와 세금 제도 개선, 국방 강화에 참여했으며 측우기를 만들고 중신기전 100개를 연달아 발사하는 화차 개발도 이끌었다. 그러나 1452년 5월 14일 즉위 2년 3개월 만에 39세로 숨졌고, 나흘 뒤 어린 세자 홍위가 왕위에 올랐다.
단종은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로 강한 정통성을 지녔지만, 출산 다음 날 어머니를 잃었다. 즉위 무렵에는 세종과 소헌왕후, 문종도 모두 세상을 떠나 친누나 경혜공주만 가까운 혈육으로 남아 있었다. 문종의 고명을 받은 황보인과 김종서는 황표정사로 인사를 비롯한 국정을 보좌했다. 단종도 한겨울 문종의 비석에 쓸 돌을 캐자는 신하들의 요청을 백성의 고생을 이유로 미루는 등 독자적인 판단을 보였다.
고명대신 김종서와 안평대군의 세력이 가까워지자 수양대군은 권람의 추천으로 한명회를 만나 조직을 확대하고 신숙주와 무인들을 끌어들였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은 일부 측근의 반대와 이탈에도 거사를 강행했다. 그는 적은 수의 수행원과 김종서의 집을 찾아 사모 뿔과 편지를 구실로 접근한 뒤, 시종이 철퇴로 김종서의 머리를 내리치게 했다. 같은 날 경혜공주의 집에 머물던 단종에게 김종서가 반역을 꾀해 먼저 제거했다고 알리면서 계유정난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