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통일대축전 진압 인권침해 조사 요구
핵심 요약
1996년 연세대 통일대축전 시위 참가자 197명이 경찰 진압 과정의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신청인들은 연행·구금 중 폭력과 여학생 성추행 증언을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조사 범위가 2001년 11월까지 확대된 3기 진실화해위가 사건을 다룰 수 있게 됐다.
1996년 연세대학교 통일대축전 당시 경찰 진압 과정에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를 겪었다고 주장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13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신청에는 당시 57개 대학에 소속됐던 197명이 참여했다. 피해자 모임은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에 대한 공적 조사를 요구했다.
신청인들은 지난 30년 동안 행사의 실정법 위반과 시위의 폭력성은 집중적으로 다뤄졌지만, 진압 과정에서 이뤄진 위법하거나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 행사는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연행·구금 과정의 폭력과 여학생 성추행 피해 증언도 장기간 방치됐다며 진실화해위의 직권조사를 촉구했다. 당시 경희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김종욱 피해자 모임 간사는 지난 5월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신청인을 모았다.
사건은 1996년 8월 12일 오전 11시 30분께 학생들이 정부의 집회 불허에 항의하며 연세대 정문 앞에서 화염병을 던지면서 시작돼 9일간 이어졌다. 경찰은 헬기 11대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진압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5천848명이 연행됐고 462명이 구속됐으며 3천341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연행자가 발생했고, 시위대가 옥상에서 던진 보도블록에 맞아 경찰관 1명이 숨졌다.
이번 신청은 3기 진실화해위가 2001년 11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시기까지 조사할 수 있도록 과거사정리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해졌다. 2기 위원회의 조사 범위는 노태우 정부까지였다. 신청인들은 사건이 대규모 시국사건으로 번진 배경과 진압 과정을 규명하고, 정부를 상대로 한 집회·시위에서 집회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범위를 민주주의 발전 수준에 맞춰 다시 논의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