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테베에 세워진 58분 구출작전 지휘관
핵심 요약
엔테베 국제공항에 인질 구출작전 지휘관 요나탄 네타냐후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스라엘군은 1976년 58분간의 작전으로 인질 102명을 구출했고 요나탄은 전사했다. 동상은 적대 관계를 끝내고 1994년 수교를 회복한 이스라엘과 우간다의 변화를 드러낸다.
우간다 엔테베 국제공항에 1976년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다 숨진 이스라엘군 중령 요나탄 네타냐후의 동상이 들어섰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친형인 그는 이스라엘에서 3000㎞ 넘게 떨어진 이곳에서 특공대를 이끌었다. 동상 건립은 과거 적대국 군인의 희생을 용기와 의무의 상징으로 기리는 동시에, 관계를 회복한 두 나라의 변화를 보여준다.
1976년 6월 27일 텔아비브를 떠나 파리로 가던 여객기가 아테네 이륙 직후 납치돼 엔테베 공항으로 향했다. 승객 250여 명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이스라엘인이었고, 납치범들은 여러 나라에 수감된 아랍 무장대원 53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비이스라엘계 승객 상당수가 풀려난 뒤 승객과 승무원 106명이 남았다. 이스라엘군 약 100명은 7월 3일 밤 검은색 승용차로 대통령 행렬을 위장해 터미널에 진입했고, 58분 만에 인질 102명을 구출했다. 인질 3명은 교전 중 숨졌고 1명은 병원에서 피살됐으며, 이스라엘군에서는 지휘관 요나탄만 전사했다.
양국은 우간다가 영국 지배에서 독립한 1962년부터 긴밀히 협력했다. 이스라엘은 농업·의료·수자원 전문가와 군사 고문을 보내고 도로와 공항 건설, 유학생 교육을 지원했다. 그러나 1971년 쿠데타로 집권한 이디 아민이 추가 군사 지원을 거절당한 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 가까워지면서 관계가 끊겼다. 아민 정권은 엔테베 공항을 지키며 납치범들을 보호했고, 1971년부터 1979년까지 정치적 숙청과 인종 박해로 수십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군의 사전 동의 없는 진입과 우간다군 사살로 적대 관계는 한동안 이어졌지만, 1979년 아민이 축출된 뒤 흐름이 바뀌었다. 1986년 집권한 요웨리 무세베니 정부는 1994년 이스라엘과 수교를 회복하고 농업·기술·무역·군사 훈련 협력을 확대했다. 베냐민 네타냐후는 작전 40주년인 2016년 형이 숨진 옛 터미널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이번 동상은 무세베니의 장남이 건립을 주도했다. 형의 죽음 뒤 베냐민은 요나탄 대테러 연구소를 세우고 국제회의를 열었으며, 외교관과 국회의원을 거쳐 1996년 총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