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타르트에 남은 포르투갈 수도원의 유산
핵심 요약
에그타르트의 뿌리는 포르투갈 수도원 음식문화와 연결돼 있다. 1834년 수도원 폐쇄 이후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제조법이 민간으로 넘어갔다. 텐투갈을 비롯한 전통 과자에는 수도자들의 자립생활과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노란 커스터드가 어우러진 에그타르트는 마카오를 거쳐 국내에 널리 알려졌지만, 뿌리는 포르투갈 수도원 문화에 닿아 있다. 포르투갈어 이름은 ‘파스텔 드 나타’이며, 리스본의 ‘파스테이스 드 벨렝’은 그 전통을 대표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전국의 카페에서 만나는 익숙한 디저트 안에 수도자들의 노동과 격변기의 역사가 함께 담긴 셈이다.
에그타르트가 수도원 밖으로 나온 계기는 19세기 포르투갈의 정치적 변화였다. 1820년 자유주의 혁명 이후 왕실의 보호를 받던 교회와 수도원은 기반을 잃었고, 1834년 모든 수도원과 수녀원이 폐쇄되면서 성직자들도 떠나야 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과자 제조법은 설탕 정제 회사로 넘어갔고, 이 회사가 수도원 옆에 연 가게가 파스테이스 드 벨렝이다. 다만 최초의 제조자와 정확한 탄생 과정은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수도복과 제의에 풀을 먹이거나 와인을 맑게 할 때 달걀흰자를 사용한 뒤 남은 노른자에 설탕을 섞었다는 기원설도 전해진다.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은 남아 있지 않아 확정된 역사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수도원이 기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음식과 약, 술을 만들어 판매하며 자립했던 경제 공동체였다는 점은 디저트와 수도원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포르투갈 중부 텐투갈 마을의 전통 과자도 수도원 음식문화의 흔적을 간직한다. 종이처럼 얇게 늘인 반죽에 달걀노른자와 설탕으로 만든 소를 넣으며, 17세기 성모탄생수녀원 기록에도 등장한다. 이 밖에도 오보스 몰레스, ‘수녀의 배’라는 뜻의 바리가 드 프레이라, ‘천사의 턱’을 뜻하는 파푸스 드 안주, ‘천국의 베이컨’이라는 의미의 토시뉴 두 세우가 전해진다. 포르투갈의 달콤한 과자들은 수도원의 시간과 노동이 남긴 문화유산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