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부터 탁족까지, 옛사람들의 폭염 대처법
핵심 요약
신라와 고려에서는 계곡이나 서늘한 지역을 찾아 피서하고 삼복 휴가와 공사 중단 제도를 운영했다. 조선은 노역자에게 척서단을 지급하고 일부 죄수의 구금을 완화하는 등 폭염 피해를 줄이려 했다. 왕실은 얼음과 찬 음식 등을 활용했고 백성은 모시옷·죽부인·탁족으로 여름을 견뎠다.
냉방기와 냉장 시설이 없던 시대에도 한반도 사람들은 계절과 신분에 맞는 방법으로 폭염을 견뎠다. 신라 법흥왕 때인 525년 김입종 일행은 계곡물이 흐르는 울산 천전리 일대를 찾았고, 고려는 삼복에 관리에게 사흘간 휴가를 주며 건축 공사를 중단했다. 충렬왕은 개경보다 서늘한 서경에서 머물 장소를 찾도록 신하를 먼저 보내기도 했다.
조선은 폭염을 생산력을 떨어뜨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인식했다. 정조는 1794년 수원 화성 축성 현장의 노역자들을 위해 온열 질환의 예방·치료용으로 보이는 척서단 4000정을 만들어 나누도록 했다. 태종과 성종 때에는 한여름 감옥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을 풀어주거나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하는 조치도 시행했다.
조선 임금들은 주로 경복궁 경회루나 창덕궁 후원에서 부채를 부치고 수박·참외를 먹으며 더위를 피했다. 궁중에서는 오매와 꿀, 한약재로 만든 제호탕을 차게 마셨고, 성종은 찬물에 밥을 말아 먹었으며 영조는 보리 미숫가루를 즐겼다. 정조는 독서에 몰두했지만 연산군은 약 600㎏짜리 놋쇠 쟁반 네 개에 얼음을 채워 사방에 놓았고, 뱀을 넣은 대나무 원통에 앉거나 기대 열기를 식혔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백성들은 모시옷과 부채, 나무 그늘, 정자, 죽부인을 활용하고 농사일을 새벽과 해 질 무렵에 집중했다. 양반들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을 즐겼으며 한양에서는 북한산 근교로 당일 모임을 떠났다. 반면 바다는 어업과 소금 생산이 이뤄지는 위험한 노동 공간으로 여겨져 해수욕 풍습이 없었다. 1913년 부산 송도해수욕장이 문을 열고 인천 월미도와 원산 송도원 등에 해수욕장이 생기면서 국내에도 해수욕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