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국제법 좌절 담은 유묵, 116년 만의 귀환
핵심 요약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국제법보다 무력이 앞서는 현실을 개탄하며 쓴 유묵이 116년 만에 귀환했다. 유묵에는 1910년 3월의 작성 기록과 손도장, 뒷면 묵서가 남아 있다. 지난해 5월 존재가 확인된 작품은 환수 절차를 거쳐 같은 해 11월 국내로 돌아왔다.
안중근 의사가 국제법보다 무력이 앞서는 현실을 개탄하며 순국 직전 쓴 유묵이 11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공개됐다. 유묵에는 ‘만국공법 불여 대포’라는 글귀가 담겼다. 만국공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뜻으로, 국제법에 대한 안 의사의 신념과 당시 현실을 바라본 인식이 함께 드러난다. 안 의사는 이러한 신념을 동양평화론으로 발전시켰다.
유묵 왼쪽 아래에는 먹을 묻힌 손바닥으로 찍은 안 의사의 손도장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경술년인 1910년 3월 ‘대한국인’ 안중근이 썼다는 기록도 확인된다. 서예 전공자인 장지훈 경기대학교 교수는 글씨가 안정적이고 편안하며, 직선적인 요소와 둥근 곡선이 함께 담겨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했다. 뒷면에 묵서가 남아 있다는 점도 이 유묵의 특징이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만국공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다. 그러나 뤼순의 일본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 살인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안 의사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여러 글씨를 남겼으며, 현재 그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작품은 31점이다.
유묵 뒷면의 기록을 고려하면 뤼순감옥 형무소장이었던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첫 소장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직전 소장자는 경매를 통해 이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국가유산 당국은 지난해 5월 유묵의 존재를 확인한 뒤 환수 절차를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이번 귀환으로 안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남긴 현실 인식과 평화 사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국내에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