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유묵 환수…제국주의 모순 새긴 옥중 글씨
핵심 요약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남긴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가 일본에서 환수돼 처음 공개됐다. 필획과 자형, 운필, 왼손 손도장을 기존 유묵과 비교한 전문가들은 작품을 진본으로 평가했다. 국제법의 무력함을 새긴 작품은 동시기 유묵 ‘일통청화공’과 함께 안중근의 동양 평화 사상을 보여준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뤼순감옥에서 쓴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가 일본에서 돌아와 처음 공개됐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광복절을 앞둔 13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언론에 작품을 선보였다.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뜻의 여덟 글자에는 군사력과 힘이 국제질서를 좌우하던 제국주의 시대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
작품은 안중근이 순국한 1910년 3월 26일을 며칠 앞두고 제작됐다. 세로 196.8㎝, 가로 44.8㎝이며, 왼쪽에는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라는 의미의 글이 적혀 있다. 아래에는 약지가 짧은 왼손 손도장이 선명하다. 글씨는 행서를 바탕으로 해서와 초서를 섞어 빠르게 써 내려갔으며, 첫 글자 ‘萬’의 초서 필법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유묵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에서도 나타난다. 필획과 자형, 운필의 속도감, 손도장을 기존 보물 지정 유묵과 대조한 전문가들은 진본으로 판단했다.
이 표현은 19세기 일본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에서 유래했다. 안중근은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수행한 정당한 전쟁 행위라며 국제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다.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에서도 만국공법을 토대로 한 동양의 평화와 질서를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살인죄로 기소해 사형을 선고했다. 이번 유묵은 그가 마주한 국제법의 무력함과 당시 국제질서의 모순을 압축해 보여준다.
뒷면 묵서에는 뤼순감옥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처음 소장했고, 이후 자신을 ‘평문광생 뇌협일인’이라 밝힌 인물이 넘겨받아 표구·보관한 경위가 남아 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지난해 5월 일본 현지 협력망을 통해 작품의 존재를 확인하고 조사와 협상을 거쳐 같은 해 11월 국내로 들여왔다. 공개 현장에는 안중근이 1910년 3월 간수과장 기요타에게 써준 보물 ‘일통청화공’도 함께 나왔다. 두 작품은 제작 시기와 동양 평화 사상을 공유하며, 공통으로 쓰인 ‘公’자의 필법을 통해 서체 특징도 비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