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첫 공개
핵심 요약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쓴 ‘만국공법불여대포’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다. 손도장과 글씨체, 기존 보물과의 서풍 비교 및 뒷면 전승 기록을 통해 진본임이 확인됐다. 국제법에 따른 재판이 거부된 현실과 동양 평화를 향한 안 의사의 문제의식이 여덟 글자에 담겼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국제법보다 무력이 앞서는 현실을 비판하며 쓴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광복절 81주년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일본으로부터 환수한 유묵을 언론에 선보인다. 지난해 5월 현지 협력망을 통해 존재를 확인한 뒤 조사와 협상을 거쳐 같은 해 11월 국내로 들여왔다.
세로 196.8㎝, 가로 44.8㎝인 유묵에는 ‘만국공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의미의 한자 여덟 글자와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왼쪽 아래에는 안 의사의 손도장이 찍혔다. 행서를 바탕으로 해서와 초서를 섞은 힘 있는 글씨는 기존 보물과 비교한 결과 필획 처리, 자형 구성, 운필 속도와 서풍에서 높은 유사성이 확인돼 진본으로 평가됐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수행한 정당한 전쟁 행위라며 만국공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단순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그는 1910년 2월 사형 선고를 받고 3월 26일 순국했다. 미완성 저술 ‘동양평화론’에서 국제법에 기초한 동양의 평화와 질서를 구상했던 만큼, 유묵의 여덟 글자에는 힘의 논리가 국제법을 압도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응축됐다.
유묵 뒷면의 먹글씨에는 하얼빈 의거부터 사형 집행까지의 경과와 최초 소장자, 표구 및 보존 이유, 전승 과정이 기록돼 있다. 뤼순감옥 수감 당시 안 의사를 배려한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처음 소장했고, 이후 자신을 ‘평문광생 뇌협일인’이라 밝힌 인물이 넘겨받아 표구한 사실도 확인됐다. 공개 현장에는 안 의사가 같은 달 간수과장 기요타에게 써 준 보물 ‘일통청화공’도 함께 나온다. 두 유묵은 동양 평화를 향한 사상과 전승 기록을 공유하며, ‘공’자의 형태를 통해 서체 특징도 비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