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호 친일 행적 확인…사전 수록 기준엔 미달
핵심 요약
안상호가 이토 히로부미 추모 행사 준비와 친일 단체 활동에 참여한 기록이 확인됐다. 행위의 적극성과 반복성이 수록 기준에 미치지 않아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하영은 가족사를 가볍게 소개한 일을 사과하고 역사를 신중하게 대하겠다고 밝혔다.
배우 하영의 증조부인 의사 안상호(1872~1927)가 이토 히로부미 추모 행사 준비와 여러 친일 단체 활동에 참여한 기록이 확인됐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13일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 등재 기준에는 미치지 않았지만, 확인된 행적을 근거로 친일 인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안상호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1909년 경성에서 열린 추모대회의 준비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조선총독부 총독의 자문기구 성격을 띤 경성부협의회 의원을 지냈고, 내선융화를 뒷받침한 동민회와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에서도 활동했다. 1918년 12월 10일에는 안상호 가족이 내선일체의 모범 사례로 소개됐으며, 당시 그는 조선 옷과 매운 음식을 멀리하고 일본인과 같은 생활을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안상호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의 4389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사전은 일본의 국권 침탈과 식민 통치, 침략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피해를 끼친 인물을 1차 사료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선정한다. 분야별 기준과 함께 행위의 적극성, 지속성, 반복성을 살피는데, 안상호는 다른 친일·반민족 행위자들과 비교해 적극성과 반복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수록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논란은 하영이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집안을 4대째 이어진 의사 가문으로, 안상호를 일본에서 서양의학을 배워 한양에 개원한 첫 의사로 소개하면서 불거졌다. 하영은 12일 자필 사과문을 내고 증조부와 관련된 일로 실망과 상처를 준 점을 사과했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다고 반성하며, 가족의 역사와 당시 시대를 살피고 앞으로 역사를 더욱 신중하게 대하겠다고 밝혔다. 방 사무처장은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논란이 생긴 구체적 맥락과 해방 이후 이어진 반성·화해의 문제까지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