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호 친일 행적, 기록으로 따져야 할 이유
핵심 요약
안상호의 대정친목회 활동과 당시 언행이 친일 논란의 핵심 기록으로 확인됐다.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지만 사전 수록 여부만으로 행적을 단정할 수는 없다. 친일 청산과 인물 평가는 미화나 섣부른 단죄가 아닌 검증된 기록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
한 여배우의 증조부로 알려진 의사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을 둘러싸고 친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확인된 자료에는 친일 성격을 지닌 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이 남아 있지만, 안상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 사전 수록 여부만으로 친일 행적의 존재를 단정하거나 부정하기보다 개별 기록과 그 의미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한 뒤 순종의 전의와 이왕직 외부 주치의 등을 지낸 당대의 고학력 의료인이었다. 역사문제연구소가 2007년 발표한 논문 <대정친목회와 내선융화운동>에는 그가 1916년 친일 성격의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참여한 기록이 실려 있다. 일본인과 자신이 같고 조선 옷이 없으며 매운 음식도 먹지 못한다는 취지의 언행도 그의 친일적 성격을 판단할 자료로 제시됐다.
독립운동가의 사진과 생애를 조사해 초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항일 활동뿐 아니라 식민통치에 협력하거나 저항하다 변절한 사람들의 흔적도 함께 마주하게 된다. 친일 행적이 자료로 확인된다면 이를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고 기록과 연구를 거쳐 역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는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는 작업인 동시에 독립운동가들이 감당했던 삶을 온전히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반대로 학술 연구나 신뢰할 자료 없이 인터넷상의 단편적인 글만으로 한 사람의 생애를 친일이라는 한 단어에 가두는 태도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같은 기록을 다르게 재단하면 역사적 평가의 정확성과 친일 청산의 정당성까지 훼손될 수 있다. 인물의 공과 과를 부풀리거나 줄이지 않고 확인된 것은 기록하며 없는 사실은 없다고 밝히는 원칙이 요구된다. 조상의 과거를 후손이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는 신중한 선택과 책임이 따른다.